매일신문

[메디컬 프런티어] 계명대 동산병원 심장내과 김윤년 교수

부정맥 치료 '권위'…"환자 위해선 발명도 합니다"

계명대 동산병원 김윤년 교수는 부정맥을 귀신같이 잡아내는 의사인 동시에 원격진료시스템을 구축한 발명가이다.
계명대 동산병원 김윤년 교수는 부정맥을 귀신같이 잡아내는 의사인 동시에 원격진료시스템을 구축한 발명가이다.

"한 곡 들려드릴까요?" 계명대 동산병원 심장내과 김윤년(57) 교수는 뜬금없이 이렇게 물어왔다. 연구실 한쪽에 놓인 클래식 기타를 보며, "음악을 좋아하시나봐요?"라고 기자가 질문했더니 잠시 머뭇거림도 없이 멋진 연주로 답을 해 주었다. 의과대학 교수 연구실에서 울려퍼지는 기타 소리. 인터뷰하던 중에도 "뭐, 기왕에 한 곡 더 해보죠"라며 빼어난 솜씨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의사는 다면체가 돼야 해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작스레 "돈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김 교수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뭐 저런 질문을 다하나'라고 말하는 듯한. 한동안 머뭇거리더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대신 "기타는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인생의 친구"라고 답했다. 그는 뚝배기 같은 사람이다. 비록 어눌한 말투지만 많은 생각을 담고 있었다.

사실 의사가 될 마음은 없었다.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성적 때문에 고 3때 갑작스레(?) 의과대학으로 진로를 정했다. 의대 공부는 힘들었다. 재시험도 많이 쳐봤고, 유급도 당해봤다고 했다. 의외였다. 인터뷰 전에 귀띔받은 김 교수의 별명은 '천재' '발명가'. 그는 의사지만 계명대 생체정보기술개발사업단장으로 원격진료서비스와 가슴에 붙이는 심전도 측정기 등을 개발한 발명가다.

음악으로 전공을 바꾸는 것까지 고민하던 의대생이 부정맥 분야의 내로라하는 권위자가 된 원동력은 뭘까. 잠시도 쉬지 않는 호기심 덕분이었다. 그는 "심심해서"라며 담담하게 말했지만.

고교에 진학하자마자 결핵을 앓았던 그는 1년 휴학하는 동안 독학으로 기타를 배웠다. 대학생이 된 뒤 경북대 의대 클래식기타 동아리인 '현우회'를 만들었다. 의대생뿐 아니라 수학, 음악, 법학을 공부하는 친구들과 만날 수 있는 모임인 '카메라타'에도 참여했다. 원래 '카메라타'(Camerata)는 오페라 탄생에 기여한 16세기 이탈리아의 다양한 예술가 집단을 일컫는 말. "의사는 다면체가 돼야 합니다. 의사가 만나는 사람은 별의별 직업을 다 갖고 있습니다. 그들과 공감하려면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해야 합니다." 1976년 당시만 해도 용어조차 낯설던 컴퓨터를 처음 접한 것도 바로 카메라타 모임 덕분이었다.

◆부정맥의 선두주자

매사에 열심이다. 원래 의대를 졸업한 뒤 성형외과를 지원하려고 했다. 외모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서였다. 아름다운 인체를 보다 잘 알기 위해 화가를 찾아가 인체 소묘를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결국 그는 내과를 택하게 됐다. 어쩌면 30년 전의 부득의한 선택 덕분에 기꺼운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는 의사가 됐는지도 모른다.

동산병원에 심장내과(당시 순환기내과)에 몸담은 지 7년 만에 미국 미시건대로 연수를 가게 됐다. 딱히 세부전공을 찾지 못하던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계기였다. 당시 부정맥 분야에서 세계적 대가였던 머레이디 박사를 만났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부정맥은 치료할 생각도 안 했고, 치료방법도 없었어요. 무슨 약을 써야 하는지도 몰랐죠." 부정맥은 심장이 갑작스레 빨리 뛰는 '빈맥', 정상치보다 훨씬 느리게 뛰는 '서맥'으로 나뉜다. 이를 방치할 경우 흔히 말하는 돌연사, 급사에 이를 수 있는 무서운 질환이다.

국내와 달리 미국에서 부정맥은 치료 가능한 질병이었다. 혈관 속으로 미세기구를 집어넣은 뒤 심장에서 부정맥을 일으키는 부위를 정확히 찾아내 이를 제거하는 혈관내 수술법을 배웠다. 이른바 발작성 빈맥을 치료하는 '고주파 전극도자절제술'이었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한강 이남에서 부정맥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지역에서 김 교수뿐이었다.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지금까지 '고주파 전극도자절제술'로 치료한 사례는 3천례에 육박한다. 심장혈관 속에 미세기구를 집어넣은 뒤 고주파를 쏴서 정확한 원인 부위를 치료하는 것. 2, 3㎜ 단위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의 절제술 성공률은 97%에 이른다. 심장이 느리게 뛸 때엔 인공심박동기를 넣어야 한다. 자칫 심장이 느려지면 의식장애가 올 수 있다. 김 교수는 인공심박동기 삽입수술만 1천례에 이른다.

◆도움을 줄 때 가장 큰 보람

부정맥은 짧은 시간에 발생한 뒤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환자들이 병원에 왔을 때엔 진단이 어렵다. 김 교수가 2005년부터 가슴에 붙이는 심전도기기인 '하트 콜'(Heart Call) 개발에 몰두한 이유다. 심박을 실시간 지켜볼 수 있다면 진단도 빠르고, 위기상황에도 재빨리 대처할 수 있기 때문. 4년 만인 지난해 3월 제품 개발이 끝났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환자들이 간밤에 보내온 심전도 기록부터 살펴봅니다. 제 휴대폰이나 집에 있는 컴퓨터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환자들의 부정맥이 없으면 기분이 너무 좋아요."

이 제품 덕분에 부정맥이 있는 산모가 무사히 출산하기도 했다. 임신 17주에 찾아온 그 산모는 부정맥이 너무 심했다. 돌연사 위험이 크다 보니 주위에선 낙태를 권유할 정도였다. 하지만 '하트 콜' 덕분에 아기와 산모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부정맥이 왔다 싶으면 즉각 진정제를 투여했다. 지난 5월 건강한 아기가 태어났다. 그는 휴대폰에 전송된 아기 사진과 문자를 보여줬다. "이럴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죠.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합니까." 인터뷰 내내 무뚝뚝한 표정이던 김 교수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울릉도와 독도 주민들의 건강도 살핀다. 원격진료서비스 덕분이다. 독도의 유일한 주민인 김성도 씨의 부정맥과 뇌졸중도 원격화상진료시스템으로 발견, 빠른 이송치료로 건강을 되찾아주기도 했다. 카자흐스탄이나 네팔 등 동산의료원 국제분원이 있는 곳까지 원격진료시스템을 계획 중이다. 직접 찾아가지 못해도 멀리서나마 인술을 전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는 의료서비스가 마케팅의 대상이 되는 것이 마뜩잖다. 자신을 인터뷰하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의사는 모름지기 인술을 펴야죠. 옛날 선배들 보면, 어려운 사람들 공짜로 치료해주고 원장이 볼까봐 뒷문으로 나가게 도와줬대요. 얼마나 멋있어요." 그는 자가용이 없다. X-선 아래에서 장시간 수술을 하다 보니 야간시력이 많이 나빠졌다. 아내가 모는 소형 승용차로 매일 출퇴근한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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