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검객들 이얍! 무료한 일상을 후려치다

대구 달서구청 검도 동아리 '중단세'

찜통 더위가 대지를 삼켜버린 6일 오후 7시. 대구 달서구청 검도 동아리 '중단세'(검도의 겨눔세·기본이 되는 자세)의 훈련장인 대구 달서구 상인동 대구검도관.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이 곳에도 땅위의 뜨거운 열기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가만히 서있기도 땀이 흐르는 날씨에도, 검도 장비로 중무장한 중단세 회원들은 발바닥만 내놓은 채 죽도에 기합을 불어 넣고 있었다.

"중단세, 차렷! 머리치기 10회 시작."

회장을 맡은 황우영(48·의회사무국·3단) 씨의 구호에 맞춰 회원들이 일제히 죽도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15분 정도의 기본 동작 훈련을 마치자 이마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본격적인 연습에 앞서 회원들이 정성을 모아 호구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호면까지 쓰자 검객이 됐다.

큰 원을 그리고 맞은편에 서 있는 회원과 대련이 시작되자 날렵한 동작에 힘찬 기합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이소룡의 기합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굵직한 테너의 음성도 흘러 나왔다. 기합의 음폭은 달랐지만 저마다 힘이 가득한 짧고 간결한 기합소리였다. 박진규(50·건축과·초단) 씨는 "기합은 단순히 내지르는 소리가 아니라 그간의 수련에서 쌓인 내공이 묻어 있다"고 했다.

전광석화처럼 '타닥타닥' 죽도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상대의 몸을 가격하는 '쩍'하는 둔탁한 파열음이 더위를 날려버렸다.

30여 분 간 쉴 새 없이 죽도를 주고받은 뒤 비로소 호면을 벗자 얼굴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5분간의 묵상과 서로간의 예를 주고받으며 1시간의 훈련이 끝났다. 그러나 열정적 동작에 거친 숨소리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더위에 호구로 몸을 덮은 채 1시간 동안 운동을 했으니 그 운동량은 엄청나 보였다. 천종성(48·건축과·2급) 씨는 "속옷은 물에 담근 것처럼 땀에 젖어 있다"며 "요즘처럼 더울 때 하는 연습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중단세는 2009년 1월 5일 결성됐다. 꼭 1년 7개월이 지났다. 평소 검도를 해온 황 회장의 제안으로 회원들이 모였다. 시작할 때 23명이었던 회원은 지금 15명으로 줄었다. 창단 후 매주 월~금요일 오후 7시부터 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 수련이 힘들어 떠났고, 전출로 부득이하게 자리를 비운 회원도 있었다. 검도가 힘든 운동임을 감안하면 남은 회원들의 열의가 대단함을 알 수 있다. 꾸준하게 운동한 회원들은 건강과 함께 실력도 늘었다.

시작 당시 2단이었던 황 회장은 3단이 됐고, 초단이었던 총무 김종률(44·세무과) 씨는 2단이 됐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검도를 시작했던 박진규 씨도 초단 대열에 합류했고, 유일한 홍일점 김정남(30·징수과)씨도 1급을 땄다. 짧은 경력이지만 봄에 열린 3·1절 기념 검도대회에 출전해 선전을 했고, 7월에 열린 대구시장기검도대회에도 개인전과 단체전에 출전, 실력을 선보였다.

달서구청 내 동아리 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중단세는 올해 창단 20주년을 맞는 달서구청 검도부(신용만 감독)의 명맥을 생활체육분야로 이어가고 있고, 훈련장으로 쓰고 있는 대구검도관 이병진 관장의 배려와 지도로 수련에 열중하고 있다.

1년7개월, 평일 저녁시간을 검도에 바치다보니 회원들은 저절로 건강해졌다. 심신을 다지는 데 검도만한 게 없다고 자랑하기 바쁘다. 박진규 씨는 "검도를 하면서 구부정하던 자세가 꼿꼿해졌고 8자 걸음걸이도 고쳤다"고 했다. 천종성 씨는 "상대의 빈틈을 찾으며 집중력이 높아졌고, 죽도로 상대를 쳐야하기 때문에 상대를 배려하는 예의도 배우게 됐다"고 했다. 상대와 거리를 두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함을 익히고, 참을성을 높일 수 있다.

호면을 쓴 멋스러움에 시작했지만 사실 호면을 쓰면 머리는 조여오고 소리마저 제대로 들리지 않아 처음엔 갑갑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맨발로 움직이며 전광석화처럼 죽도를 후려치다보면 당장 없어지는 것이 스트레스다. 발에 체중이 실리다보니 발 건강이 좋아지고, 5, 6kg의 무거운 호구를 착용한 채 전신을 움직여야하기 때문에 칼로리 소모가 많아 비만 걱정도 없다. 심폐 기능이 좋아져 지구력, 순발력, 민첩성을 키우는데도 도움이 된다.

가장 큰 매력은 심신의 조화다. 검도는 기검체일치(氣劍體一致), 심기력일치(心氣力一致)의 수련 과정에서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심 등 강인한 정신력을 기르게 한다. 공무원의 직업 특성상 민원인들을 많이 접해야하는 이들에겐 스트레스 해소와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민원인들을 만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래도 김정남 씨는 "타격의 손맛이 최고"라고 했다. 김 씨는 "남자다운 강한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검도는 성차별이 없는 운동"이라며 "서로 몸을 부딪치고 마음껏 기합을 넣어 크게 소리 한번 지르고 나면 머리와 가슴에 쌓인 스트레스가 사라진다"면서 "힘보다 기술을 필요로 하는 운동이어서 여성들에게도 적당하다"고 했다.

황 회장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치열하게 싸운 상대와 마주앉아 경기 끝까지 서로의 예를 잊지 않는 매너가 더 중요한 운동"이라며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자신을 다스리고 인내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검도"라고 말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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