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길은 아니었지만 맥간(맥클러드 간즈)에 일단 도착하고 나니 맘이 편했다. 어깨의 무거운 짐도 내려놓았다. '일단 더위부터 피하고 보자'는 목적 달성도 했다. 한국에서의 복잡한 삶은 한동안 끝, 이제 현실의 부담감을 훌훌 벗어던진 유목민으로서의 삶을 살게 됐다. 장장 6주가 넘는 '인도 아닌 인도' 맥간에서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숙소 찾아 새로운 마을로
사실 맥간살이의 시작은 일단 '실패'였다. 계획대로라면 우리의 숙소는 ZKL이라는 티베트 사원에 딸린 게스트하우스. 맥간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조용한데다 가격도 싼 편이라 외국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그러나 지친 몸을 이끌고 한참을 걸어 도착하니 '만원'이었다. 우리처럼 인도 남부의 더위를 피하려는 배낭여행객들이 몰리는 시기임을 생각하지 못했다. 지친 몸에 실망감을 안은 우리는 맥이 빠진 상태에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되는 대로 잡은 임시 숙소에서 다음날 느긋이 늦잠을 자고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찾았지만 당분간 예약이 꽉 찬 상태. 숙소로는 단념하고 그냥 맥간 지나 위치한 마을, 박수 낙(Bhagsu Nag)을 향해 걸었다.
걸어서 불과 15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박수는 맥간과는 확연히 다른 특성을 지닌 곳이다. 우선 티베트인 주인이 많은 맥간과 달리 상점에서 티베트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불교 사원 대신 힌두 사원만 자리를 잡았다. '히피의 천국'으로 대변되는 박수는 레게 파마 머리의 히피족들, 특히 이스라엘 청년들로 넘쳐나는 곳이다. 이와 함께 자연스레(?) 따라다니는 마리화나도 박수를 대표하는 이미지이다.
박수로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멀리 초록빛 산봉우리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하얀 설산의 정상이 눈에 들어왔다. 맥간이나 박수는 히말라야 자락인 다울라다르(Dhauladhar) 산맥이 자리한 캉그라(Kangra) 골짜기의 산세가 장관을 연출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화창한 여름 햇살을 받은 채 빛나는 풍경이 압권. 이를 감상하며 발걸음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다른 명물인 '박수 폭포' 입구에 다다랐다. 하나뿐인 통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데, 수량이 많지 않아 폭포라는 느낌은 별로 나지 않았다. 몬순(monsoon, 우리나라로 치면 장마) 기간에 비가 내린 뒤 수량이 늘면 볼 만하다는 평이다.
◆숙박비 계산도 인도식으로
리아의 관심은 폭포보다는 골짜기 건너편에 보이는 카페였다. 길게는 20분까지 가파른 길을 오르내려야 갈 수 있는 곳인데, 달랑 집 두 채만 있는 것이 상당히 고즈넉해 보이는 장소. "6, 7년 전 왔을 때 보고 뭐하는 곳인지 궁금했다"는 리아는 "기회가 되면 저곳에서 머물며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기대감에 잰걸음으로 올라가니 커다란 단풍나무가 바람소리를 내며 흩날리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건물은 달랑 2채가 전부였는데, 게스트하우스로 쓰고 있었다. 위쪽에 있는 치나르(Chinar, 인도어로 '단풍나무'라고 한다) 소울 게스트하우스에는 이미 서양인 3명이 자리를 잡은 상태. 관리인이 대접한 차를 마시고 잠시 얘기를 나눈 뒤 리아는 6주간 머물기로 바로 결정을 내려 버렸다. 6년여를 기다려왔던 기회 아닌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숙박비를 치르는 과정에서도 '인도식 셈법'이 적용됐다는 점이다. 하루 300루피의 숙박비를 장기간 할인, 250루피로 해준다는 것이 관리인의 말. 하지만 자신한테 하루 50루피를 '서비스 요금'으로 달라고 했다. 부엌도 이용할 수 있고, 아래쪽 숙소에서 거의 전용 숙소처럼 쓸 수 있단 생각에 그러마고 했지만 돌이켜보면 조금 찜찜하다. 6주란 기간 동안 도대체 무슨 서비스를 받았는지 전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매일같이 짜이(인도식 밀크티)라도 마실 걸 그랬나?' 싶다.
◆외국인 천국, 공용어는 영어
힌두어와 영어를 비롯한 언어 천국으로 알려진 곳이 바로 인도. 이런 언어의 다양성은 맥간도 다르지 않다. 먼저 인도인들이 살고 있는 만큼 힌두어가 사용되는 것은 당연한 일. 여기에 망명 티베트인들의 본거지이다 보니 티베트어도 일상적으로 쓰인다. 전 세계에서 다양한 이유로 찾아오는 외국인 여행객은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 티베트인 가게든 인도인 가게든 어디를 들어가나 영어 몇 마디면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
가게 안내 간판은 더욱 다양하다. 잘 살펴보면 어느 나라 여행객이 많이 찾아오는지도 알 수 있다. 힌두어, 티베트어, 영어 외에 일본어도 찾아볼 수 있다. 이스라엘인이 주고객인 박수 지역에선 히브리 글자도 쉽게 눈에 띈다.
그동안 한국인도 얼마나 다녀갔는지 일부 가게 주인들은 '안녕하세요' '예쁘다'는 말로 리아와 나를 놀라게 했다. 심지어 티베트 사원인 남걀(Namgyal) 사원 가는 길의 한 라핑(Lhaping, 청포묵 같은 노란색의 티베트 음식) 노점상에는 '맥간 최고의 묵집'이란 한글 간판까지 걸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도에서 약 두 달을 보내는 동안 리아와 내가 배운 힌두어라고는 '나마스떼'(인사말), '단야밧'(감사의 표현)이 전부였다. 티베트인 친구들을 사귀다 보니 오히려 티베트 말을 더 많이 배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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