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는 책을 팔아 돈을 얼마나 벌까. 무조건 많이 팔기만 하면 돈을 버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많이 팔 수 있는 것일까? 출판계에서는 '어떤 책이 많이 팔릴지는 신(神)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른바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운(IMF 때의 '아버지', 20대의 취직 문제가 부상했을 때 '88만원 세대', 영화나 드라마의 인기를 등에 업었을 때 등)도 따라야 하지만, 광고나 마케팅 없이 대박은 어렵다.
◇많이 팔면 대박일까?
출판사 입장에서는 책을 많이 팔면 돈을 버는 것이 상식이다. 소설 3천 권을 팔면 대충 본전을 하고, 4천 권을 팔면 조금 남는다. 그 이상 파는 대로 수익이 남아야 상식에 부합한다. 그러나 무조건 많이 판다고 출판사가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미실'은 제1회 세계문학상을 홍보하기 위해 주관사인 세계일보사와 출판사의 대대적인 홍보와 마케팅이 있었다. TV와 신문 등에 그야말로 '융단폭격'에 가까운 광고를 퍼부었다. 당시 '미실'은 15만 부 이상 팔렸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출판사는 돈을 벌지 못했다.
'미실'을 펴낸 문이당 출판사 임성규 대표는 "소설 '미실'이 많이 팔린 것은 사실이지만 광고 비용이 엄청났다. 출판사는 오히려 적자를 봤다"고 말한다. 2009년 MBC 사극 '선덕여왕'에서 '미실'을 연기했던 고현정의 인기 덕분에 다시 소설 '미실'이 베스트셀러에 잠시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출판사 측은 "드라마 종결과 동시에 책 판매가 중단됐고 반품도 많아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다고 해서 출판사가 반드시 돈을 버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박은 계속되는가
출판계 만큼 '연속 홈런'이 드문 분야도 드물다. 운과 전략으로 한번 '대박'을 칠 수는 있지만 두 번 연속 성공은 무척 어렵다. 물론 예외는 있다. 예컨대 김훈이나 공지영, 신경숙처럼 유명한 작가의 책은 두세 권 잇따라 대박이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이들 작가의 경우 출판사들 사이에서 모셔가기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이름나지 않은 작가의 책들은 우연히 한 권이 베스트셀러에 오른다고 해도 다음 책이 잘 팔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래서 출판계에서는 '한번 대박을 맛본 뒤 대박의 향수에 젖어 무리하게 광고와 마케팅에 올인했다가 쪽박 찬다'는 말이 나온다. 꽤 이름난 작가의 경우에도 2, 3권 연속 대박을 치기는 무척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베스트셀러'란 독서 마니아층이 아니라, 평소 독서에 무관심한 사람들도 많이 사서 읽을 때 가능한 것이고, 이때 독서는 그야말로 '유행'이다. 독자들이 대박이 난 특정 작가의 책을 한 권 사본다고 해서, 그 작가의 다음 작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유행'의 단계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는 '작품의 완성도'가 아니라 '유행'이냐 '아니냐'에 따라 결판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판사들은 일단 대박을 터뜨리고 나면 알 수 없는 열정과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무리한 공세를 펼치기 십상이고, 이전에 '대박'으로 번 돈까지 고스란히 투입하고 휘청거리기 일쑤라는 얘기다.
◇ 출판사의 흥망성쇠
설립 때부터 성공을 보장받는 출판사는 없다. 어떤 출판사는 설립 2, 3년 안에 이른바 '대박'으로 '메이저 급' 출판사로 자리매김하고, 또 어떤 출판사는 설립 10년, 20년이 지나도 제자리걸음인 경우도 있다. 휴먼앤북스 하응백 대표는 "출판사들은 설립 3, 4년 안에 십중팔구 망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책 팔아서 사업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짧은 기간에 급성장하는 출판사도 있다. 위즈덤하우스와 다산북스, 샘 앤 파커스 등이 좋은 예다. 이들 출판사는 10여 년 만에 규모나 매출 면에서 눈에 띄게 성장했다. 짧은 기간에 급성장한 출판사의 경우 몇 가지 성공 노하우가 있다. 위즈덤하우스의 경우 다른 업체들보다 먼저 인터넷 마케팅에 착수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가 100만 부 이상 팔리면서 급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문학동네'의 경우 1990년대 초에 출범했지만 신경숙의 '깊은 슬픔'으로 대박을 친 후 곧 메이저급이 됐다. 일단 한번 유명해지고 나면 유명저자, 능력있는 마케팅 책임자를 끌어오는 데도 훨씬 유리해진다. 한 번의 성공이 두 번째 성공을 부르는 것이다.
자금과 함께 학맥, 지맥 등 인맥도 좋은 원고를 받는 데 한몫을 한다. 예컨대 문학과 지성사를 창립한 문학평론가 김병익, 민음사 박맹호 사장(현재는 장은수 사장), 창비의 설립 주체 백낙청 교수 등은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이들은 확실한 인맥으로 좋은 원고를 많이 입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름 없는 출판사는 좋은 원고를 받기 어려워 빈곤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연히 대박을 터뜨려 자본이 갖춰지면 메이저 출판사가 되고, 메이저 작가와 계약이 가능해진다. 휴먼앤 북스 하응백 대표는 "2002년 당시 신생 출판사였던 '은행나무'는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전 홍명보 선수와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라는 책을 계약했다. 그런데 마침 한국이 4강에 올라가면서 책이 50만 부나 팔렸고, 안정적인 출판사가 됐다" 고 말한다.
위즈덤하우스 편집자 이효선 씨는 "큰 출판사에서 오래 일했던 편집장들이 작은 출판사로 옮기면서 대형 출판사 근무 당시 맺었던 인연을 활용해 외국 도서를 선점하거나 국내의 좋은 지은이를 잡아서 성공하는 경우가 있다. 고즈윈, 에코의 서재, 푸르메, 비채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