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행, 경북을 걷다](33)포항-내연산을 거슬러

김종준 작-내연산 관음폭포 김종준 화백은 학창시절 보경사 계곡을 찾아온 적이 있다고 했다. 30년 세월이 흘렀으니 길도 바뀌고 집도 바뀌었다. 하지만 내연산 보경사 계곡을 따라 흐르는 12폭포의 모습만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특히 관음폭포는 물줄기를 맞으며 절벽에 난 동굴로 들락거렸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며 웃어보였다. 그림 속에는 여름 햇살과 시원한 폭포수, 맑디맑은 물웅덩이가 바로 곁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폭포 위를 가로지르는 연산구름다리를 건너면 낙차가 가장 큰 연산폭포를 만날 수 있다.
김종준 작-내연산 관음폭포 김종준 화백은 학창시절 보경사 계곡을 찾아온 적이 있다고 했다. 30년 세월이 흘렀으니 길도 바뀌고 집도 바뀌었다. 하지만 내연산 보경사 계곡을 따라 흐르는 12폭포의 모습만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특히 관음폭포는 물줄기를 맞으며 절벽에 난 동굴로 들락거렸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며 웃어보였다. 그림 속에는 여름 햇살과 시원한 폭포수, 맑디맑은 물웅덩이가 바로 곁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폭포 위를 가로지르는 연산구름다리를 건너면 낙차가 가장 큰 연산폭포를 만날 수 있다.
보경사계곡 =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숲이 우거져 따가운 여름 햇살도 감히 뚫고 들어올 생각을 못한다.
보경사계곡 =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숲이 우거져 따가운 여름 햇살도 감히 뚫고 들어올 생각을 못한다.
연산폭포 = 연산폭포의 가장 큰 멋은 장쾌함이다. 폭포 아래 소용돌이치는 소(沼)는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연산폭포 = 연산폭포의 가장 큰 멋은 장쾌함이다. 폭포 아래 소용돌이치는 소(沼)는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다람쥐 = 내연산 계곡은 특히 여름철이면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만 호기심 많은 다람쥐는 연신 길 위를 뛰어다닌다.
다람쥐 = 내연산 계곡은 특히 여름철이면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만 호기심 많은 다람쥐는 연신 길 위를 뛰어다닌다.

포항에서 울진쪽으로 7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월포해수욕장 입구를 지나 송라면에 닿는다. 여름철이면 내연산과 인근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송라 땅에 얽혀있는 숱한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송라는 조선시대 군사와 교통의 요충지였다. 조선 세조 6년(1460년)에는 인근 8개 읍(영해, 영덕, 청하, 흥해, 연일, 장기, 경주, 울산)에 있는 14개 역을 송라도(松羅道)라 불렀고, 중종 30년(1535년)에는 종6품 찰방이 다스리는 경상도의 6개 주요 도(道) 중 하나가 될 만큼 번창했던 곳이다.

현재 청하면에서 월포해수욕장으로 가는 동서간 도로와 7번 국도와 만나는 곳이 월포네거리인데, 여기서 1㎞쯤 북쪽으로 가면 왼편에 골프장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이리로 가면 국도변에서 산자락 아래까지 800여 m 이어진 기다란 숲이 등장한다. 바로 하송리 '여인의 숲'이다. 내연산과 맞닿아 바로 서남쪽에 자리잡은 천령산에서 발원한 물은 청계저수지를 지나 청하천을 따라 동해로 빠져나간다. 청하천을 따라 생겨난 마을이 삼송리(상·중·하송리)이다. 하송리에서 산자락까지 이어진 숲이 '여인의 숲'.

삼송리는 청하천을 따라 바로 바다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마을이 바다로 가면 쇠퇴한다해서 이를 막는 문(門) 역할을 하도록 인공적으로 만든 숲이다. 숲을 일군 사람은 역촌에서 큰 주막을 경영해서 자수성가한 김설보(1841~1900년)라는 여인. 관에서 숲 일대를 사들여 느티나무, 이팝나무, 쉬나무를 심어 거대한 숲을 이룬 뒤 다시 마을에 기증했단다. 숲이 한창 자랄 당시, 대홍수로 청하천이 범람해 가축이며 사람까지 급류에 휩쓸렸는데 마침 이 숲에 걸려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처럼 뜻 깊은 숲이건만 일제 때 강제공출의 피해로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마구 베어지는 수난을 당했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징용되거나 고기 잡으러 먼 바다로 나간 마을 장정들이 많이 죽으면서 과부가 갑작스레 늘어나는 불행이 닥쳤다고도 한다. 여인이 세상을 떠난 지도 110년. 안타까움이 많은 숲으로 남아있다.

다시 길을 달려 송라면 소재지를 지나 내연산 보경사에 이른다. 신라 진평왕 때에 지명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스님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불경과 팔면보경(八面寶鏡)을 연못에 묻고 지었다고 해서 보경사로 불리게 됐다. 연륜에 비해 화려하거나 큰 규모를 자랑하지는 않지만 소담한 경내와 울창한 솔숲은 도시의 번잡함을 씻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고려 고종 때의 고승인 원진국사의 비석(보물 제252호)과 부도(보물 제430호) 등 문화재도 살펴볼 만 하다. 절 가운데 있는 보경사 오층석탑은 천년 역사를 자랑한다. 고려 현종 14년(1023년)에 세워진 이 탑은 경북도문화재로 지정돼 있으며, 소박하지만 날렵한 모양새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경내를 벗어나 계곡을 따라 오른다. 내연산(710m)은 문수산(622m), 향로봉(930m), 삿갓봉(718m), 천령산(775m)등의 제법 높은 봉우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이들 사이로 깊고 아늑하게 간직된 계곡이 바로 청하골이다. 제1폭포인 쌍생폭포부터 가장 윗쪽에 자리한 제12폭포 시명폭포까지 휘돌아 떨어지는 물줄기가 잠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특히 제7폭포인 연산폭포까지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유난히 폭포에서 떨어진 소(沼)가 깊고 넓은 잠룡폭포(제4폭포)는 영화 '남부군'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선 남부군 대원들이 발가벗고 목욕하는 곳이 지리산 골짜기로 나오지만 실은 내연산 청하골이었다.

이 곳의 열두 폭포 중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곳은 관음폭포(제6폭포). 깎아지르는 절벽이 마치 거대한 석상처럼 에워싼 이 곳에 폭포수가 조각처럼 빚어놓은 관음굴이 자리잡고 있고, 그 위에서 쌍폭포가 시원스레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다. 마침 장마가 한 줄기 비를 쏟아붓고 지난 뒤여서 물줄기는 더욱 힘이 넘친다. 관음폭포 옆으로 난 계단을 올라 연산구름다리를 건너면 연산폭포(제7폭포)가 위용을 드러낸다. 높이 30m에 이르는 폭포는 위압적이다. 자칫 한걸음이라도 제껴 디뎠다가는 물줄기에 휩싸일 것만 같다.

이 아름다움에 겸재 정선도 반했던 모양이다. 겸재는 58세 되던 1783년 초 경상도 청하현감으로 제수됐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겸재는 마음껏 작품활동에 전념했다. 최고의 역작으로 꼽히는 '금강전도'와 함께 내연산의 폭포를 담아낸 '내연산삼용추도'와 '청하성읍도'를 완성했다. 특히 연산폭포를 굽어보는 절벽인 '비하대'에 자리잡은 500년생 소나무를 소재로 그린 '고사의송관란도'를 부채에 그려냈다. 오랜 세월에 비틀어지고 굽은 노송 아래 신선으로 보이는 한 노인이 시라도 한 소절 읊는 듯한 모습이다.

폭염 속에 산행은 쉽지 않다. 바로 곁에 흘러넘치는 계곡의 물줄기 못지않게 땀줄기가 온 몸을 적셔버렸다. 당초 12폭포를 다 보려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미 시간이 제법 흐른데다 가장 아름답다는 폭포까지 봤으니 이쯤하면 됐다며 스스로 타협한 탓이다. 내려서는 길에 작은 계곡에서 발원해 청하골로 이어지는 물줄기에 발을 담궜다. 발이 시려 30초를 견디기 힘들었다.

다시 7번 국도로 올라선 뒤 잠시 영덕쪽으로 달리면 화진해수욕장 못미쳐 왼쪽 골짜기로 접어드는 길이 나온다. 이 곳에는 의병활동에 3.1운동 근거지인 '두곡숲'이 있다. 1919년 3.1운동의 불길이 전국으로 번질 때 이 곳 마을 사람들이 두곡숲에 모여 만세를 불렀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엔 왜국 상륙부대와 맞서서 의병부대가 매복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 왜군이 화진 백사장에 상륙해 주둔하면서 마을을 노략질하자, 인근 마을의 관원과 의병들이 합세해 적을 치기로 했다. 이들은 두곡숲에 집결해있다가 밤을 틈 타 왜군을 공격해 큰 승리를 거뒀다고 한다. 당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처참했던 역사를 기억하기라도 하듯이 '썩은숭이네고랑'이라는 지명이 남아있고, 대동여지도에는 이 곳을 '골곡포'(骨谷浦)라고 기록하고 있다. 두곡숲에서 가장 큰 당산목은 500년이 넘는 느티나무다. 그저 피서철에 잠시 머물거나 스쳐가는 곳으로만 알았던 송라 땅. 옷은 온통 땀에 절었지만 마음은 왠지 가뿐해졌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포항시청 문화관광과 김진규 054)270-2274

전시장소 협찬=대백프라자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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