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8년 만에 다시 찾아온 암…강미숙씨

첫번째 수술비 빚도 아직 다 못갚았는데…

유방암이 재발해 마지막 남은 가슴도 도려내야 하는 강미숙 씨는 빚만 늘어가는 살림 때문에 투병 의지를 잃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유방암이 재발해 마지막 남은 가슴도 도려내야 하는 강미숙 씨는 빚만 늘어가는 살림 때문에 투병 의지를 잃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2010년 7월 19일. 이날은 최민혁(가명·22) 씨의 입대 날이었다. 하지만 그는 머리를 깎고 훈련소에 가지 않았다. 대신 민혁 씨는 요즘 병원에서 지낸다. 유방암에 걸린 어머니 강미숙(가명·46) 씨를 간호하기 위해서다. 그에겐 국방의 의무도 소중하지만 어머니 곁을 지키는 게 먼저다. 미숙 씨가 유방암 치료를 받게 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미숙 씨가 처음 암에 걸렸을 때 중학교 2학년이었던 민혁 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어머니의 든든한 팔다리가 되고 있다.

◆어머니를 지키는 든든한 아들

미숙 씨가 첫 유방암 진단을 받은 건 2002년이었다. 태극전사들의 월드컵 4강 진출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지만 이들 가족에게 2002년은 최악의 해였다. 그해 가을, 미숙 씨의 가슴 속에서 암세포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당시 14살이었던 민혁 씨는 학교를 열심히 다니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어머니가 없는 부엌에서 아버지는 밥을 했고, 아들은 그 밥을 먹었다. 반찬 투정을 하지 않고 학교에 꼬박꼬박 잘 나가는 게 어머니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말 잘 듣는 착한 아들 덕분에 미숙 씨는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었다. 왼쪽 가슴을 도려내는 수술과 힘든 항암치료를 잘 견뎌냈다. 그렇게 쓰나미 같은 아픔이 지나가는 듯했다.

그로부터 8년 뒤, 후폭풍이 몰아쳤다. 한쪽 남은 미숙 씨의 가슴을 암세포가 또다시 공격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치료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던 민혁 씨 가족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보다 사정이 나아진 게 있다면 단 하나, 이제 어른이 된 아들이다. 입대를 미루고 병원에서 엄마 곁을 지키고 있는 민혁 씨는 "엄마가 나아서 병원을 나가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나 때문에 아내가 병을 키워"

지난 2005년부터 미숙 씨는 병원에 정기적으로 가지 않았다. 정기검진을 받을 때마다 몇십만원씩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였다. 가뜩이나 없는 형편에 치료를 받으며 생긴 빚, 남편과 아들이 받을 고통을 생각하면 미안해서 더 이상 자신의 몸에 돈을 들일 수 없었다.

2002년에 치료를 받을 때에는 남편이 미숙 씨 이름으로 가입해 둔 암 보험 덕을 조금이나마 봤다. 하지만 보험사에서 지원한 것은 '수술비'뿐이었다. 입원비, 방사선과 항암 치료, 약 등에 드는 비용이 더 많이 든다.

남편 최수철(가명·51) 씨는 "우리가 3만5천원짜리 작은 보험에 들어서 그렇다"며 "암보험에도 만기가 있어 이번에는 지원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8년 전에 1차 치료를 받으면서 이들 가족은 2천만원이 넘는 돈을 썼다. 56㎡ 남짓한 아파트를 담보로 3천500만원을 은행에서 빌려 치료비를 마련했다. 당뇨와 고혈압까지 안고 사는 미숙 씨는 더 이상 집에 폐를 끼칠 수 없어 병원에 가지 않았던 것이다.

수철 씨는 "내가 돈을 넉넉하게 못 줘서 아내가 병을 키웠다"며 속상해했다. 그는 "돈만 있었더라면 검사도 제때 받고 아내가 또다시 아파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현재 수철 씨는 섬유공장에서 물건을 나르고 포장하는 일을 한다. 몸이 고단한 일이다. 이렇게 해서 버는 돈은 한 달에 120만원 정도. 이 돈은 아내 치료비는커녕 생활비로도 부족하다. 팔순을 바라보는 수철 씨의 어머니가 폐지를 주우며 살림살이에 보태려 노력하지만 역부족이다. 지금 남편이 기댈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집에만 빚이 있는 게 아니에요"

민혁 씨는 "내 앞으로도 빚이 많다"고 말했다. 엄마 치료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했던 터라 민혁 씨는 스스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야 했다. 한 학기에 35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대출'. 대구의 4년제 사립대에 다니는 민혁 씨는 현재 4학기를 마친 상태다. 학교에 다니며 그가 얻은 것은 성적표를 채운 학점만은 아니다. 매학기 생활비와 등록금은 '정부학자금 대출'을 통해 마련했다.

민혁 씨 앞으로 빚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매달 3만원씩 이자를 갚고 있지만 취업을 해 원금을 갚는 날이 언제 올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아들을 바라보는 미숙 씨의 가슴은 더욱 아프다.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서, 자신의 병이 아들의 삶마저 고단하게 한 것 같아서다. 입영을 연기하긴 했지만 올가을 민혁 씨는 어머니 곁을 떠나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러 가야만 한다. 민혁 씨는 "군대 가기 전에 엄마가 다 나아 집에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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