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자산관리서비스인 '랩 어카운트'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주가가 오르면서 고수익을 내고 있는데다 증권사들도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면서 시중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것. 그러나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투자자의 손실 위험이 커지고, 시장 안정성을 해치는 등 부작용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최소 가입 금액을 제한하고, 불완전 판매를 제재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자금의 블랙홀, 랩 어카운트
올 들어 랩 어카운트가 대박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증권사의 랩 어카운트 계약금액은 지난해 3월 13조3천억원에서 지난 5월 말 현재 27조6천억원으로 1년 남짓 기간 동안 2배 이상 늘어났고 6월에는 28조2천286억원까지 치솟았다. 반면 주식형 펀드 순유출액은 지난해 10조6천억원에서 올 7월까지 11조8천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주가가 상승하면서 본전을 찾은 뭉칫돈이 랩 상품으로 몰리고 있는 셈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올해 말까지 전체 랩 어카운트 시장이 36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증권사가 고객으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한 뒤 투자자문사의 자문을 받으며 운용하는 자문형 랩의 시장 규모는 지난해 3월 284억원 수준에서 지난 5월 말 1조3천640억원으로 50배 가까이 폭증했다. 실제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지난 1월 98억원에 불과했던 자문형 랩 계약잔고가 7월 말 현재 3천880억원으로 늘었다. 4월부터는 매달 1천억원가량 증가하고 있다. 하나대투증권도 지난 1월 23억원이었던 자문형 랩 잔고가 지난달 말 현재 2천674억원으로 뛰었다.
◆하락장 때 큰 손실 위험, 주가 왜곡 현상도
자문형 랩이 높은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주가 상승을 타고 고수익을 올리고 있는데다 최소 가입금액 기준도 지난해 1억원 수준에서 최근에는 1천만원까지 내려가는 등 문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또 비교적 규제에서 자유롭고 투자자가 언제든지 보유 종목과 상품 매입단가, 수익률 현황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점도 금융위기 이후 펀드로 속앓이를 한 투자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고수익을 추구하는 데 따른 부작용도 우려된다. 자문형 랩은 보통 10~15개의 특정 종목에 집중 투자하기 때문에 주가가 오를 경우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이 급락하거나 변동성이 커질 경우 큰 손실을 볼 가능성도 상존한다. 또 투자자가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거래내역을 볼 수 있어 시장 안정성을 해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일부 개인투자자들은 최소 가입 금액만 랩에 넣어둔 뒤 투자자문사들이 주로 사는 '자문사 7공주' 종목을 추종 매매하면서 '몰빵'으로 인한 손실 위험이 커지고 가격 왜곡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최저 가입한도가 낮아지면서 투자자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공모형 펀드와 다를 바 없이 운용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 금융연구원은 최근 '랩어카운트의 현황과 대응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랩 어카운트가 소액투자자를 대상으로 판매될 경우 사실상 공모펀드처럼 집합적으로 운영돼 고객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증권사 간 고객유치 경쟁이 발생했을 경우 투자일임사는 수수료를 인하하고 성과보수 비중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아 과도한 위험추구 및 쏠림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 대책마련 부심
랩 어카운트가 사실상 펀드처럼 운용되면서 금융감독당국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투자자 보호와 증권시장 안정성 확보,일임시장 성장 촉진을 위해 다음달 초까지 개선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우선 랩 어카운트를 펀드와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신설하고 최저 가입금액을 설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또 증권사가 주기적으로 투자자와 접촉해 재무상태와 투자목적 등을 확인한 뒤 이를 자산운용에 반영하도록 했다.
아울러 투자일임수수료 외에 위탁매매수수료를 따로 받을 수 없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다른 사람의 투자 성공 사례를 들어 가입을 권유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랩 어카운트의 특성과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도록 했다. 필요할 경우 미스터리 쇼핑이나 기획검사 등을 통해 위반자를 가려낼 계획도 세웠다. 이와 함께 투자자에게 실시간으로 제공돼 추종매매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자문형 랩의 매매 내역 공개를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실시간이 아니라 1, 2주일이 지난 뒤 공개하는 식이다. 금융위는 다음달 확정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랩 어카운트란=증권사가 운영하는 맞춤형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다. 투자자가 일정금액을 투자하고, 증권회사가 투자자문사의 자문을 바탕으로 주식과 채권, 펀드 등의 투자상품을 넣어 맞춤식으로 운용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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