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이재오와 홍준표의 사향가(思鄕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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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 56세인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구를 방문, "내가 진짜 TK(대구경북 사람)"라고 했다. 초'중'고를 대구에서 다녔으니 TK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전대 이후 TK가 지명직 최고위원 한 자리라도 차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돌자 다시 "내가 원조 TK인데 무슨 소리냐"며 관례대로 충청'호남 인사가 맡는 게 옳다는 주장을 펼쳤다. 홍 최고위원은 대구경북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이가 드니 고향이 그립다"며 "고향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나 돌아가고 싶다'란 책을 출판, 작고한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애틋한 정을 표했다.

#2. 만 65세인 이재오 특임장관 내정자는 올 초 미국 유랑 생활을 접고 귀국해 문경새재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렸다. 그는 고향 영양에서 고교까지 다녔다. 4H운동에 심취했던 그는 투사가 됐고 이후 정치에 입문해 킹메이커로 성장했다. 그랬던 그가 은퇴하면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살고싶다고 했다.

#3. 8'8개각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 의원을 특임장관으로 내정했다. '왕의 남자의 귀환'이란 세평(世評)을 낳았다.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는 2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안상수 대표와 부딪치다 원희룡 사무총장으로부터 '국가 지도자께서 그러시면 곤란하다'는 점잖은 저항(?)에 직면했다.

두 사람은 많이 닮았다. '왕의 남자'와 '저격수'는 강성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탄생을 주도했다. 최근 한 사람은 정부에서, 또 한 사람은 한나라당에서 의미 있는 자리를 차지했다. 두 사람 다 고교 졸업 후 줄곧 서울에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이순(耳順)이 가까워 오거나 훌쩍 넘은 나이에 둘 다 고향을 얘기한다. 두 사람의 최근 경사를 고향 사람들도 마치 제 일인 양 즐거워하고 있다.

정작 고향 사람들은 그런 둘을 '서울 TK'라고 부른다. 둘 다 고교까지 고향에서 다닌 뒤 서울 지역 대학에 진학, 줄곧 서울에서 검사와 재야운동가로 각각 활동했다. 서울을 지역구로 국회에 진출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향을 돌볼 겨를이 없었고 정치적 인연도 적었다. 서울에서의 고향 사람 모임에도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래서 고향 사람들은 출세했으나 고향과는 상관없는 사람으로 보고 '서울 TK'라고 했다.

대구경북을 영문 이니셜로 TK라고 부른 것은 김영삼 정권 때부터다. 당시 언론들은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3김(三金)을 YS DJ JP라고 지칭했다. 지금 영문 표기법으로 하면 DG라고 해야 옳다.

그때 TK는 청산의 대상이었다. 노태우 정권과 차별화를 위해 YS 정권은 권력기관과 공직사회 곳곳을 장악하고 있는 TK를 내쳤다. 이른바 '대구 정서'란 표현도 그때 등장했다. 서울 언론들은 대구 정서를 '30년 탈권력에 따른 금단현상'이라고 정의했다.

'서울 TK'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필자의 기억으로 DJ 정권 때였던 듯하다. 늘 옆에 있는 것으로 알았던 권력을 5년 넘게 대구경북 이외 지역 출신이 가지며 대구경북을 차별하자 지난 세월을 반성했다. 그때 우리는 뭐 했느냐는 반성이었다. 서울로 올라간 TK는 출세했을지 몰라도 고향은 챙기지 않았다는 악감정을 담은 자각이었다.

당시 잣대로 보면 이재오 특임장관 내정자나 홍준표 최고위원은 일류 고교와 대학을 졸업한 주류(主流)가 아니어서 '서울 TK'로 부르기조차 마땅치 않다. 그래서 지금 그들을 '서울 TK'라 부르는 데 그와 같은 악감정이 담겨있지 않다. 고향에서 기대조차 하지 않던 비주류 TK가 서울에서 출세한 뒤 고향을 돌아보겠다고 하니 '늙은 소나무가 고향 산천을 지킨다'는 격언(格言)의 현실화인 듯해 우선 반갑다. 마침 TK가 영포회 논란 이후 국회직'당직에 이어 청와대'내각 개편에서조차 홀대받은 마당이라 더욱 그렇다.

이 특임장관 내정자와 홍 최고위원이 고향을 살필라치면 할 일이 많을 게다. TK 민심을 여과 없이 전달할 수 있는 정부와 여당의 훌륭한 통로가 될 수도 있다. 그들의 기대 밖 사향가(思鄕歌)에 귀 기울이는 '고향 TK'가 적지 않아 보인다.

최재왕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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