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8월 18일. 월요일 오전 10시.
미국 뉴욕주의 작은 마을 화이트레이크. 완만한 능선으로 이뤄진 맥스 야스거의 농장에 세워진 무대에 전설의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올랐다. 3일 전 50만 명이나 되던 사람들은 대부분 자리를 떠났고 폭우를 버틴 4만여 명의 관중들만 흙구덩이 속에서 지미 헨드릭스의 '부두 차일드'를 듣고 모두 넋을 잃고 흥분했다.
전설이 된 록 콘서트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한 장면이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1969년 8월 15일부터 재니스 조플린, 더 후, 지미 헨드릭스 등 유명 뮤지션들이 대거 출연해 무려 50만 명을 불러모은 공연이다.
'3일간(실제는 4일)의 평화와 음악'이라는 주제를 내건 우드스탁은 단순한 콘서트를 넘어 미국 혼돈의 시기에 반항하는 미국 젊은이들의 시대 정신을 담은 아이콘으로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색, 계'의 이안 감독이 연출한 '테이킹 우드스탁'이 이번 주 대구에서 개봉됐다. 우드스탁의 탄생 실화를 생생한 고증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공연을 기획했던 엘리엇 타이버의 자전적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부모님이 운영하는 모텔이 파산 위기를 맞은 엘리엇(드미트리 마틴)은 이웃 동네에서 열리기로 한 록 페스티벌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접한다. 엘리엇은 돈을 벌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페스티벌을 유치한다.
그러나 행사는 의도한 것과 달리 커져 버린다. 조용하던 마을은 히피들로 들끓고, 전국에서 밀려드는 인파에 도로는 통행 불능상태에 빠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폭우가 쏟아져 아수라장이 된다.
'테이킹 우드스탁'은 이안 감독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얻은 '색, 계'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영화다. 지난해 제62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됐다.
이안 감독은 공연이 준비되는 과정과 인파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게 보여준다. 60년대 청춘들의 패션 스타일과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행렬 속 고색창연한 자동차 등 당시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환경만 놓고 보면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최악의 공연이었다. 악천후 속에서 감전 사고 위험 때문에 기타를 잡기도 위험했고 거센 비로 공연장은 진창이었다. 잠자리와 물이 부족해 고통을 받았고 화장실도 태부족이어서 악취가 진동했다. 배변 양이 많은 음식물은 반입하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미국의 아폴로 11호 달 착륙(7월 16일) 한 달 뒤에 열린 공연이다. 미·소의 냉전 속에서 성공한 인류 최초의 달 착륙, 월남전과 반전시위, 흑백 간의 인종갈등 등 첨예한 갈등 분위기 속에서 감행된 '탈주극'과 같은 행사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성공 여부도 관심 밖이었다. 오로지 이들은 모였고, 자유를 만끽했다.
안톤 체홉의 '세 자매' 연극 도중 "파시스트 물러가라"를 외치고, 나체로 강에 뛰어들고, 반전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고함을 치고, 대마초와 환각제를 복용하는 등 말 그대로 해방구였다. 이들은 그 어떤 구속도 받지 않고 3일간의 자유를 누린다.
'자유'가 목적이었기에 이들에게 열악한 공연 환경 또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엉망이 된 공연장을 보고 실망하기는커녕 그것을 오히려 즐긴다. 진흙탕은 미끄럼틀이 되고 쓰레기더미를 바라보면서도 '뷰티풀'을 연발한다. 이 공연이 당시 우드스탁 외에서도 열렸던 여느 록 페스티벌과 다른 점이다.
공연에는 조앤 바이즈, 제퍼슨 에어플레인, 닐 영 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이 참여했다. 지미 헨드릭스는 미국 국가를 조롱하듯 연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안 감독은 공연장 주변만 보여줄 뿐 이들의 공연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공연 자체보다는 페스티벌에 참여한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함과 어머니의 잔소리에 시달리며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히지 못하는 주인공 엘리엇, 수전노 같은 엄마와 몸이 아픈 아버지, 그리고 이웃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엘리엇조차 공연의 절정을 보지 못한다. 특히 이안 감독은 환각제로 엘리엇이 느끼는 몽환적인 느낌을 판타지 영화의 특수효과처럼 그리고 있다. 능선 아래 무대에서 수십만의 인파가 일렁이는 모습을 컴퓨터의 스크린 세이버와 같은 환상적인 영상으로 보여준다. 칙칙한 현실과 달리 색감도 화려하다.
이 장면은 영화 전편에 흐르는 다큐멘터리적인 기법과는 무척 상이하다. 왜 그럴까.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열광과 의도하지 않게 혁명적이고, 무정부적으로 치달은 열정,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순수성이 충만했던 공연이었다.
그러나 록의 자유와 저항정신을 만끽했지만 3일 후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한바탕 꿈 같은 우드스탁. 이안 감독은 이루지 못한 우드스탁의 자유 세상이 아쉬워 한 편의 꿈처럼 마지막을 그린 것은 아닐까. 12일 동성아트홀 개봉. 러닝타임 120분. 청소년 관람불가.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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