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日 진정한 사죄엔 日국회 결의가 필요하다

얼마 전 한일강제병합 100년과 관련하여 일본 방위성과 나고야의 메이조 대학 초청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NHK의 한'일 관계 100년 다큐멘터리 제작팀도 만났다. 이들의 공통 관심사는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한'일 간의 과거사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 것인가였다. 7월 28일 도쿄 참의원 의원회관에서는 한'일 지식인 1천 명이 공동성명을 내놓았고 10일 간 나오토(菅 直人) 일본 총리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 담화를 발표했다.

이처럼 100년이 지난 지금도 한'일 양국에는 다른 식민지와 피식민지 사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식민지에 대한 부(負)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는 양국 관계의 미래의 가능성을 제약하고 있다.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 문제는 한'일 양국의 뜨거운 감자이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일본 정부의 태도를 지켜보고 있다. 이번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 발표로 한국인들이 납득하고 과거사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될까.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여기에서 한'일 양국은 또 고민에 빠진다.

1995년 무라야마 총리는 식민지 지배에 대해 '통절(痛切)한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담은 담화를 발표했다. 그리고 1998년 오부치 총리도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 '통절'한 반성을 표했다. 당시에도 일본이 한국의 식민지 지배를 가장 적극적으로 사죄한 것으로 높이 평가됐다. 이번에는 문화재 반환 등으로 다소 진전이 있다고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똑같은 형식이다.

그럼에도 한국민은 일본에 다시 사과를 요구하고, 일본은 앞으로 몇 번을 더 사죄해야 하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반복될까. 총리 담화의 진정성과 관련이 있다. 일본은 정권(총리)이 바뀌면 이를 계승하지 않고, 한국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발언과 행동을 되풀이했다. 이 때문에 반복되는 담화나 선언은 그것을 발표한 정권의 일회성 사죄로 의미가 약화되었다. 지금까지의 사죄는 일본이라는 국가 차원의 사죄가 아니라 무라야마 총리, 오부치 정권, 간 나오토 정권의 사죄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권이나 총리의 사과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일본'의 사죄이다. 일회성이 아니라 한국민이 납득하는 영속성을 가진 사과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총리의 담화에 앞서 일본 국회의 사죄 결의가 필요하다. 국회의 결의를 거친 사죄문을 총리가 발표하는 형식이 돼야 한다. 1993년 미국은 하와이 합병에 대해 상'하원이 사죄 결의를 하고 이 결의문을 대통령이 사인, 공표했다.

국회는 그 나라 국민의 총의를 모으는 곳이다. 일본 국회의 사죄 결의는 우익과 좌익의 모든 의견을 수렴한 일본 국민의 총의가 될 것이다. 그러면 이 결의는 일본 국민 전체의 의사로 간주되고 일본 국민 스스로도 구속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 정권은 바뀌어도 국회는 계속되기 때문이며 국회가 새로운 결의를 하지 않으면 정권 교체에도 쉽게 훼손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불안정한 사과의 반복보다는 이 편이 나을 것이다. 이쯤이면 한국도 100년에 대한 자기성찰의 의미도 포함해서,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한국이 반복해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납득할 만한 사죄를 통해 양국 간의 과거사를 빨리 정리하고 싶다는 역설적인 표현일 것이다. 언제까지나 과거에 집착하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다.

최근 KBS와 NHK의 공동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본인은 욘사마(배용준)를 통해서 한국을, 한국인은 이토 히로부미를 통해서 일본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 국가에 대한 두 나라의 인식에는 약 100년의 갭이 있다는 의미이다.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이 100년의 갭을 메울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식민지에 대한 기억은 가해자와 피해자로 비유된다. 양국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할 시점에 왔다. 특히 한국은 독립 후 이룩한 발전에 대한 자긍심으로 일본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2차 대전 이전의 일본이 비서구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였다면 한국은 식민지 수탈을 극복하고 성공한 유일한 나라이다. 한국의 자신감은 일본과 대등하고 바람직한 관계를 구축하는 토대라고 생각된다.

이성환(계명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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