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일본 센고쿠(戰國) 시대는 패자부활전이 없는 단판 승부의 험난한 시대였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상대를 치지 않으면 자기가 당하는 난세였다. 절묘한 전략전술로 승전을 거듭한 영웅이 탄생하는가 하면 한 번의 실수로 멸문의 화를 당하는 비정한 시대였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흔히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꼽는다. 저마다 평가가 다르지만 현대 일본인들은 히데요시를 불세출의 영웅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주관을 섞어 인물을 미세하게 평가하는 작가들의 경우 독특한 관점에서 인물들을 관찰하고 형상화해 낸다는 점에서 일반의 시각과는 다르다. 유명한 '두견새' 일화나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대망'에 보이는 센고쿠 영웅들의 캐릭터는 두루뭉술한 해석과 단견 때문에 독자들의 선입견을 고정시키는 데 한몫했다. 반면 나오키상 수상자이자 밀리언셀러 작가였던 츠모토 요(津本陽)는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에서 오다 노부나가에게 방점을 찍었다.
그의 관점은 이렇다. 영웅은 많았지만 난세를 평정해 나가는 전략과 비전, 정치력 등을 고루 갖춘 리더는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노부나가에게 점수를 주고 있다. 달리 말해 히데요시나 이에야스와 같은 보스는 많았으되 노부나가와 같은 유형의 리더는 극히 드물었다는 말이다. 작가는 "노부나가는 도저히 400여 년 전의 인물이라고는 볼 수 없는 철저한 리얼리스트이자 초현대인이라고 느껴질 만큼 날카로운 현실 감각을 지닌 탁월한 지도자였다"고 품인했다.
반면 히데요시는 "평민 출신의 걸출한 무장이자 뛰어난 정치 능력을 보인 인물이지만 만년의 그는 범인에 지나지 않았다"고 했다. 심지어 노부나가가 아니었다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지도 못했을 인물이라고 깎아내렸다. 이에야스에 대한 평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야전의 명장으로 불릴 만큼 능력 있고 사리 판단에 신중한 인물이지만 노부나가가 없었더라면 숙적 다케다 신겐의 휘하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고 평했다. 둘 다 보스의 자질은 있었으나 리더로서의 자격과 품격은 떨어진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노부나가는 어떤 측면에서 뛰어난 리더였을까. 한마디로 '철저하게 합리주의 정신을 가진 혁명아'였다고 작가는 평했다. 뛰어난 정보 수집력과 결단력을 바탕으로 전투를 싸움이 아닌 전략 경쟁의 장으로 바꿔 낸,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는 과분한 인물이라고 극찬했다. 경제 감각도 탁월했고 문화의 힘을 이용할 줄 알았으며 인재를 알아보는 발상의 유연성과 철저한 능력주의, 난적에게는 신중하게 장기적으로 대처하는 인내력 등을 두루 갖춘 천재였다는 것이다.
리더를 간략하게 정의하면 구성원들을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으로 이끌어 가는 지도자다. 보스처럼 군림하지 않고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다독여 목표점에 도달케 하는 지도자를 리더라고 부른다. 노부나가와 같은 자질을 갖춘 리더를 찾기가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모름지기 리더라면 이런 자질 근처에라도 가야 지도자 소리깨나 듣지 않을까 싶다.
며칠 전 개각이 단행됐다. 40대 전직 도백이 총리에 내정되는 파격 인사에 이목이 집중됐다. 일각에서는 차기 대권을 겨냥한 카드라는 말도 나오고 '자고 나니 깜짝 후보'라는 비아냥도 들린다. 소위 '잠룡'(潛龍)의 범주에서 서로 저울질하며 정치 지형을 분석하느라 바쁘다. 그런데 국민 입장에서는 이들이 리더인지, 보스인지, 정치꾼인지 헷갈린다. 권력이라는 지향점은 공통적이지만 국가와 정국을 이끌어 갈 비전이나 리더로서의 자질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자신들과 소통하고 난제들을 무리 없이 평정해 나가는 국가 지도자를 희망한다. 한 치의 땅(권력)을 두고 다투는 농민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히데요시와 같은 인물이 리더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히데요시는 '위를 보고 걷자'는 재퍼니즈 드림의 모델은 될 수 있을지언정 '멀리 넓게 보고 걷자'는 노부나가형 리더는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 장수의 아들이든 운동권 투사였든 재벌 2세 정치인이든 독재자의 딸이든 이들 모두가 리더의 자질을 갖췄다면 지금 무슨 걱정이 있을까.
徐琮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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