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에 사는 박인주(44) 씨는 세상을 뜬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화장(火葬)을 계획했다. 3일장이 끝난 이달 7일 오전에 화장을 하려고 대구 유일의 화장장인 명복공원(수성구 고모동) 인터넷 홈페이지를 찾았지만 이미 예약이 끝나 있었다. 게다가 대구 거주자보다 5배나 많은 이용료를 내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박 씨는 "오전에 발인부터 화장까지 바로 마치고 싶었지만 오후 늦게 할 수밖에 없어 자칫 4일장을 치를 뻔했다"며 "대구 거주자는 9만원이면 되는데 바로 지척인데도 행정구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45만원을 낸 것도 억울하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도시화, 핵가족화 및 장례문화에 대한 인식 변화로 화장률이 꾸준히 증가하는 데 반해 화장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화장률이 높아지면서 이미 '화장 대란'에 접어든 수도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대구경북 지역도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지역 화장률은 2003년 49.9%에서 2008년 65.2%로 급증했다. 경북 역시 2003년 31.8%에서 2008년 48.3%까지 올랐다. 대구경북은 다른 지역보다 매장 선호도가 높았지만 최근 들어 화장 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표1 참조)
반면 화장시설은 이런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대구의 화장시설은 명복공원 1곳(화장로 11기)뿐이고, 경북은 포항 2곳을 비롯해 경주, 김천, 안동, 영주, 상주, 문경, 의성, 울릉에 각 1곳 등 10곳이 있지만 전체 화장로 수가 20기에 불과하다.
올 초 할아버지를 여읜 최영준(30) 씨는 "명복공원을 이용하려다 예약을 제때 하지 못하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4일장을 치렀다"며 "경북 쪽으로도 알아봤지만 대구보다 사정이 낫지도 않을 뿐더러 운구비용과 외지인이라 더 내야 하는 이용료를 고려해 하루 더 기다렸다"고 말했다.
2008년 예약제를 도입한 명복공원은 하루 평균 20구를 처리한다. 설날과 추석을 빼고는 매일 오전 7시 30분, 10시 30분과 낮 12시 30분, 오후 2시 50분 등 4차례에 걸쳐 화장로를 10기씩 돌린다.
화장 시설 공급 부족은 전국적 현상이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도시 화장률은 70%를 넘나들지만 설치된 화장시설은 각 1곳 뿐이다.(표2 참조)
그러나 전국 지자체들은 화장시설을 늘리는데 좀처럼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광역화장시설을 건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지만 인근 주민들이 '혐오시설'이라는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고 있고, 자치단체장들은 주민을 의식해 적극적이지 않다.
지난 4월 26일 기공식을 연 경주종합장사공원(경주시립화장장) 역시 2008년 1월 시립화장시설 현대화사업계획을 수립하고 8월 경주시 서면 도리 일대를 부지로 선정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100여 차례 이상 시위를 벌이자 2년 가까이 사업이 미뤄졌다가 주민지원 협약을 맺은 뒤에야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990년대 초 10%에 머물던 국내 화장률은 2008년 61.9%로 급증했다. 하지만 전국 화장장 숫자는 1998년 44개에서 올해 50개로 12년 동안 6개가 늘었을 뿐이다. 이로 인해 화장시설 소재지 주민보다 몇 배나 비싼 이용료와 운구 비용을 감수한 채 타 지역까지 '원정 화장'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
대구시와 경북도는 이 같은 어려움을 잘 알고 있지만 주민반발때문에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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