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산사랑 산사람] 마산 무학산

확 트인 남해 풍경, 한여름 밀어내는 시원한 눈맛

금정산, 무등산, 모악산, 팔공산의 공통점은?

주지하듯 우리나라 대도시의 주산(主山)들이다. 이 산들은 배후에서 도시의 균형을 잡아주고 인문(人文)과 풍수를 규정한다. 주산의 제1조건은 지역을 아우르는 상징성과 지역민의 구심점으로서의 통합성이다. 이런 면에서 마산의 무학산은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마산 사람들은 역사, 문화의 원류를 무학산에서 찾는다. 말이 질주하는 야성의 도시 마산(馬山)에서 거친 기운을 학의 양 날개로 조율하며 오늘날까지 마산을 지탱하고 있는 무학산의 매력 속으로 들어가 보자.

#지리산에서 뻗어온 낙남정맥의 최고봉

무학산은 지리산 영신봉을 뻗어온 줄기가 남해에 입수하기 전 높게 솟구쳐 오른 낙남정맥의 최고봉이다. 시내 서북쪽에서 남북으로 길게 뻗어 마산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무학산의 옛 이름은 풍장산'두척산(斗尺山). 신라 말 최치원이 이곳 산세를 보고 '학이 춤추는 형세'라고 품평한 데서 유래됐다. 높이(767m)에 비해 산세가 험하고 웅장해 겨울 북서풍의 찬 기운을 든든하게 막아준다.

무학산 등산의 장점은 시내와 마산만을 감상하며 오르는 시원한 눈맛. 거기에 고도를 높여가며 펼쳐지는 남해 다도해의 풍경은 바닷가 산행의 백미로 부를 만하다. 무학산 등산로는 크게 12코스가 있다. 그 중 서원곡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에 무학산의 특징이 잘 집약돼 있다. 취재팀은 서원곡으로 올라 학봉을 거쳐 정상으로 오른 후 마산여중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잡았다. 서원곡은 조선시대 회원서원(檜原書院)이 있었던 자리. 조선 중기 정구(鄭逑) 선생을 배향한 서원이다. 바로 인근엔 최치원과 제자들이 어울려 학문을 토론했다는 관해정이 남아 있다.

서원곡 진입로는 상가를 드나드는 차량들로 북적인다. 좁은 도로에서 차를 비켜가느라, 배기가스를 피하느라 등산객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연과 경치와 요리를 모두 즐기려는 탐욕이 이런 희생 위에 기초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기는 알까.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최고의 사진 포인트를 물었더니 "깨끗한 해상도를 즐기려면 학봉(鶴峰)이 최고"라고 귀띔한다. 무학폭포로 오르던 길을 급히 돌려 왼쪽 학봉으로 향했다. 학봉으로 오르는 길은 울창한 숲길의 연속, 40여 분만에 학봉에 도착한다.

#발밑에 펼쳐진 시가지 풍경에 환호

역시 학봉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바로 발밑에 펼쳐진 마산 시가지 풍경에 일행은 걸음을 지체한다. 항아리 모양으로 자리한 마산만의 수려한 곡선이 시선을 간지른다. 얼마 전에 세웠다는 마창대교의 날렵한 모습도 멀리서 정겹다. 명성대로 마산은 바다와 산과 도시의 환상 조합이었다.

학봉은 학의 신체 중 머리에 해당되는 곳. 봉우리는 낮아도 산의 정기가 모인 풍수 포인트. 일제 강점기 때 기혈을 끊기 위해 전국 명산에 철못을 박을 때 여기 학봉 정수리에도 쇠침을 박았다고 한다. 취재팀은 다시 서원곡으로 접어들어 정상으로 향한다.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무학폭포를 지나쳤다. 대신 물맛이 좋다는 암반 약수터에서 목을 축인다. 그때 무더위 속에서 60대 남자가 짐통을 지고 나타났다. 34℃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그의 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몇 번의 사양 끝에 겨우 이름 석 자를 밝힌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2동에 산다는 김윤택(62) 씨. 그는 20년 동안 무학산을 오르내리며 등산로를 정비했다고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짐통과 망치를 들고 산길을 고르고 땅을 다졌다. 자신이 다듬은 길로 편안히 산길을 오르는 것을 볼 때 기분이 좋다는 김 씨. 자기 이름처럼 세상을 '윤택'하게 하는 은둔의 봉사자였다.

일행은 다시 정상으로 향한다. 마산 시내를 한눈에 굽어보는 전망대에 들른다. 이어서 가파른 계단길이 나타난다. 365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사랑계단이다. 이 계단은 다시 정상 부근의 건강계단과 연결된다. 1년 내내 건강하게 화목하게 지내라는 설계자의 의도가 읽혀진다. 두 계단 중간에 '서마지기' 광장이 있다. 이름대로 서마지기 규모의 넓은 평지다. 이 광장은 마산 시민의 정신을 한데 모을 큰 일이 있을 때 회합의 공간으로 쓰였다고 한다.

지금은 여름 특수를 노린 빙과류 장사의 호객소리로 부산하다. 아이스크림 하나로 목을 축인 후 건강계단으로 오른다. 드디어 정상. 넓은 평지에 정상석이 우뚝 서 있다. 트인 사방으로 도시 주위의 원경(遠景)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이런 도시의 풍광을 배경 삼아 많은 예술가들이 창작 열기를 펼쳤다. 작곡가 이은상과 조두남, 시인 천상병, 음악가 반야월, 영화감독 강제규 등이 이곳에서 예술적 영감을 키웠다.

#부마항쟁 정신의 발원지

정상석 옆 행간으로 곧게 내려쓴 문구가 눈길을 끈다. '3월 정신의 발원지.' 서슬 퍼런 자유당 정권 침몰의 신호탄이었던 김주열 열사 사건, 유신정권 종언을 알린 전주곡이었던 부마(釜馬)항쟁의 정신이 이 산에서 비롯됐음을 시민들은 자랑스럽게 새겨 놓은 것이다. 산은 이미 황폐화돼 맨살을 드러냈다. 그래도 높게 걸린 태극기에서 마산의 '3월 정신'을 본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피해 내리막길로 나선다. 하산길은 만남의 광장-마산여중으로 잡는다. 곳곳에 약수터가 널려 있다. 양(量)만큼 수질도 뛰어나다. 마산은 옛날부터 양조산업이 번창했다. 한때 이곳의 무학소주는 전국 대표 브랜드 중 하나였다.

봉화산 약수터 밑에 성진사가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 49재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고 절 안에서는 낭랑한 독경의식이 진행 중이다. 불당은 유족들의 망자엔 대한 애도로 경건하다. 들썩이는 저 작은 어깨는 아마도 미망인인 듯하다. 망자(亡者)의 회한을 매미소리에 묻고 일행은 다시 하산길을 재촉한다.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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