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강남몽 / 황석영/ 창비

강남, 우리시대 욕망의 기호

강남이 우리 시대 욕망의 기호가 된 지 오래다. 소설가 황석영은 강남 형성사를 오래 전부터 쓰고 싶었다고 한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평범한 논밭과 강가의 갈대밭과 모래밭이 황금의 땅으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면. 소설 『강남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 여자 박선녀는 남산 영감 김진의 둘째 부인이다. 요정의 새끼마담으로 시작한 그녀는 룸살롱을 직접 경영하기도 했고, 알짜 부동산과 점포도 꽤 소유하고 있다. 어느 날 본부인의 둘째 며느리 생일선물을 사러 갔다가 백화점이 무너지는 바람에 그녀의 운명은 바뀌게 된다. 그 여자의 남산 영감 김진은 일제시대 온가족이 만주에 건너가 살 적에 우연히 일본 경찰의 정보원이 된다.

체계적인 훈련과 실전을 거쳐 그는 마침내 유능한 정보원으로 성장하였고, 해방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미군 측 정보원으로 활약하게 된다.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늘 미군 편에서 활동한 그는 전쟁과 분단의 와중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그의 삶에는 한국 현대정치사의 온갖 굵직굵직한 일들이 함께했고, 그는 미국편에서 그 모든 일에 그림자처럼 끼어든다. 그리고 그는 일본이 남기고 간 적산가옥 몇 채를 헐값에 불하받은 것을 시작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많은 돈을 벌게 된다.

그와 함께 정보부에 관여했던 이들 중에는 군대에 뛰어들었다가 나중에는 정치가의 길을 걸었으며, 이후에는 미모의 여인과 함께 나라를 뒤흔드는 사기사건으로 감옥을 들락거리는 이희철을 비롯해, 만주육사를 수석으로 졸업하며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였으나, 해방 후에는 남로당원 간부로 활동했고, 경찰에 체포되어서는 살기 위해 동료를 배신하는 박정희까지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조국이나 민중의 삶이라는 대의보다는 자신의 살 길만을 도모하는, 이기적이고 눈치 빠른 인간군상들. 전 재산을 털어 독립운동에 나서거나 가족을 이끌고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으며 만주로 떠났던 이들, 혹은 학교를 세워 후세를 교육하고 나라를 되찾고자 밤잠을 설친 이들이 아닌, 자신의 생존과 안위만을 위해 살아간 자들이 독립된 나라에서 승승장구하며 살아간다.

또 다른 인물은 우연한 기회에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든 심남수. 그는 알고 지내던 공무원을 통해 남서울개발계획을 알고 사채업자가 땅을 사들이도록 도우며, 자신도 한몫 챙기는 부동산업자 박기섭과 함께 부동산 투기의 현장에서 강남 형성사를 목격한다. 백화점 아동복 매장의 임시직으로 일하던 중 백화점 붕괴로 매몰되었다가 구조되는 생존자 정아와 광주대단지 사건의 피해자인 그녀의 가족사도 소개된다.

작가 황석영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십여 년에 걸친 남한 자본주의 근대화의 숨가쁜 여정과 엄청난 에피소드들을 단순화하고 꼭두각시, 덜머리집, 홍동지, 이심이 등등 인형같은 캐릭터들이 남한사회의 욕망과 운명이라는 그물망 속에서 서로 얽혀서 돌아간다. 나는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이 차례로 무너지던 1995년 무렵을 일단 정치적으로는 형식적 민주주의 시대의 출발로, 경제적으로는 개발독재가 종언을 고하면서 한국 자본주의가 스스로 재생산구조를 갖추게 되는 시기로, 그리고 문화적으로는 사회변혁에 대한 열정으로 지식인의 머릿속에서만 형성되어온 민중이 걷잡을 수 없는 소비사회의 적나라한 대중으로 휩쓸려들면서 욕망에 얽혀가는 시대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바로 그즈음에서 시작하여 거꾸로 현재의 삶을 규정하는 최초의 출발점을 향하여 거슬러 올라간다. 이른바 '몽자류 소설'은 구운몽, 옥루몽, 홍루몽 등 수십 편이 되는데, 주인공이 꿈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인물로 태어나 파란만장을 겪다가 꿈에서 깨어나는 과정을 통하여 자아의 깨달음을 얻는다는 식으로 규정되어 있다."

강남이라는 공간을 통하여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면서, 우리들의 욕망과 부유하는 삶을 말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작품 속에서 얼마나 잘 구현되었는지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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