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화. 기도와 수행을 업(業)으로 하는 종교인들도 예외일 수는 없다. 오랜 수행과 기도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화를 참고 다스리는 것은 종교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힘든 과제다. 종교인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화를 잘 조절하라고 조언한다. 알면서도 잘 안 되고 후회하면서도 어려운 화 다스리기. 가톨릭과 불교, 기독교 등 지역 종교계 인사들의 화 다스리는 비법에서 지혜를 빌려 보자.
◆동화사 주지 성문 스님
#나만이 옳다는 생각, 집착을 버려라
"흔히 상대방이 약점을 보이거나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면 교만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약점과 단점을 들추며 흉을 보거나 공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도 언제나 그러한 경우에 처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동화사 주지인 성문 스님은 화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우선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아집과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라는 것이 상대방에게 원인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마음 속에 그 원인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화를 내기 전에 잠깐만이라도 왜 화가 나 있는지를 자문(自問)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다음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다시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의 과정을 한 번 더 거치고 나면 어느새 활활 타오르던 분노의 불길은 한결 수그러들어 있을 것입니다."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도 화를 멀리 하는 방법 중 하나. "아름다운 말 한마디는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고 커다란 복을 쌓으며, 거친 말 한마디는 듣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고 커다란 화를 부르지요."
특히 현대사회가 복잡하고 다양해지면서 화낼 일이 많아지고 화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상생과 화합'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신의 것만 고집하면 결국 충돌이 발생하고 화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계는 글로벌 시대를 맞아 모든 존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생과 화합의 원리 속에서 미래지향적인 평화의 삶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절대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상대적인 세계관으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며 나만이 옳다는 생각, 나의 것이라는 집착을 벗어버리는 것이 결국 마음 속 화를 다스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요."
◆삼덕젊은이성당 배상희 주임신부
#겸손과 차선을 선택하는 여유
대구 삼덕젊은이성당 배상희 주임신부는 "화가 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상사나 친구, 배우자 등 관계의 문제에서 발생한다"며 "스스로 부족하고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겸손해지는 것이 화를 다스리는 첫걸음이다"고 조언했다. "직장, 가정, 친구, 경제, 심지어 날씨에 이르기까지 화가 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부분 관계의 문제에서 발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위와 자신의 뜻이 다르게 결론이 나거나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화를 냅니다. 이 과정에서 좀 더 많이 안다고 착각하고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우기거나 이익을 추구할 때 다툼이 일고 결국 화가 생겨나는 것이지요." '나는 부족한 사람이고 배울 것이 많다'는 겸손한 자세와 세상사에 한 수 접고 마음을 비우는 여유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배 신부는 화를 멀리 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구체적인 목표 세우기'를 생활화하고 있다고 했다. 계획적인 삶을 살지 못하면 직장이나 가정에서 화나는 일이 자연스레 생길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단, 목표를 세웠을 때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을 고집하는 것은 화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 "최고가 되려고 고집하다 보면 최고가 되기도 어렵거니와 실패했을 때 결국 실망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지요.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하겠지만 차선으로 만족하는 여유를 가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차피 나이가 들면 누구나 비슷한 모습이 되는 게 인간사 아니겠어요. 눈앞의 것만 보면 화는 벌써 우리 눈앞에 떡 하니 와 있지요."
◆대봉제일교회 윤성권 목사
#참는 것보다 잘 조절해서 화내라
"목사님도 화를 낼 줄 아십니까?" 대봉제일교회 윤성권 목사는 신도들이 이렇게 물어오면 당황할 때가 많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나도 사람이다"는 답과 함께 웃음으로 넘겨 버리지만 솔직히 화를 참기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고 한다. "화가 나는 상황은 사람마다 다르지요. 그러나 아주 작은 상황이 그 날 자신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 화로 표출되는 것이 대부분이지요. 나도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던 말이나 행동이 감정이 흐트러져 있을 때 화로 표출돼 결국 나와 주변을 힘들게 하는 때가 있습니다."
윤 목사는 화를 무조건 참는 것보다 화를 잘(?) 조절해서 내는 것이 화를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화를 내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이므로 화를 내되 이를 잘 조절해서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 화를 극복하는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자신의 감정 상태가 불안하거나 불균형적이라고 판단될 때 '오늘 마음이 좀 편치 않습니다' 혹은 '당신의 그 말에 제가 지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고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 상태를 표현한다면 화를 내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고 주변이나 상대방도 그러한 감정의 상태를 이해하고 도우며 조심하게 되지 않을까요."
어떻게 하면 화를 잘 낼까. 윤 목사는 우선 자신이 옳다는 아집과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왜 상대방이나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어 오를까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국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조건 진리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이 화를 부르지요. 내가 잘못 알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화가 사라지고 짜증이 없어집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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