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세계최고기록의 변화를 살펴보면 경기력 이외에도 평탄한 코스와 기온환경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최고수준의 경기력을 주도하는 올림픽대회에서 마라톤의 세계최고기록이 수립되었던 경우는 1908년 런던, 1912년 스톡홀름, 1920년 앤트워프, 에티오피아의 아베베 비킬라가 2연패한 1960년 로마와 1964년 도쿄대회 등 다섯 차례뿐이다. 특히 1964년 이후의 올림픽에서 세계최고기록이 수립된 경우는 한 차례도 없었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마라톤종목에서도 세계최고기록이 수립된 경우는 없었다. 가장 오랜 전통의 보스턴대회는 32㎞ 지점의 '마의 심장 파열 언덕'으로 유명한 매우 힘든 코스로 알려져 있다. 보스턴대회에서 세계최고기록이 수립된 것은 제47회에서 우리나라의 서윤복 선수가 2시간25분39초로 우승한 경우가 유일하다.
기록변화추세를 살펴보면 1980년대 초반 올림픽 우승기록이 세계최고기록에 근접한 바 있으나 1990년대부터 다시 현저한 차이를 나타냈다. 1990년대 이후 국제적인 마라톤 붐이 일어나면서 마라톤대회는 스포츠마케팅의 중요한 이벤트로 등장했다. 주요 국제마라톤대회는 우승자와 우수기록에 많은 상금을 시상하고, 세계최고기록 수립의 유명대회가 되기 위해 상대적으로 평탄한 코스와 적절한 기온에서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이에 반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는 기록보다는 순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다른 종목도 함께 개최되는 종합대회로서 마라톤종목만을 위한 기온조건을 적절하게 맞출 수 없는 제약을 가지고 있다.
실제 세계최고기록이 수립된 주요 대회는 베를린, 런던, 로테르담, 시카고, 후쿠오카, 도쿄 등에서 개최된 국제마라톤대회이다. 현재 세계최고기록 10걸의 대부분은 베를린과 런던의 평탄하고 서늘한 기온에서 에티오피아, 케냐 선수들이 수립한 기록이다. 서늘하고 평탄한 코스에서 스피드에 강한 아프리카 선수들이 기록 단축을 주도해 왔다. 그러나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는 기록 단축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역대 올림픽 우승자를 보면 2000년 시드니에서 에티오피아의 게자네 아베라, 1960년 로마의 아베베 비킬라 등 아프리카 선수가 7차례 우승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2명의 우승자 중 6명이 아프리카 선수였다. 그러나 마라톤 최강국인 케냐가 올림픽에서 우승한 것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처음이다. 아프리카 마라톤을 대표하는 에티오피아와 케냐는 지리적으로 서늘하고 건조한 지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들 나라 선수들은 고온다습한 레이스에서 비교적 약세를 나타냈다.
30℃ 내외의 고온에서 개최된 베이징올림픽에서 2시간6분32초의 올림픽 최고기록으로 케냐에 올림픽 첫 우승을 안긴 사무엘 완지루는 15세 때 이미 일본으로 건너왔다. 베이징올림픽과 2009년 베를린대회 모두 고온의 혹서기 레이스에서 케냐 선수가 6분대의 기록을 수립하는 등 아프리카 선수들이 고온에 적응하는 경향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최근 케냐와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환경적응의 경험을 통해서 고온과 다습한 환경에서도 비교적 잘 달리지만 원래 자라난 생활환경과의 차이 때문에 기록상금이 주어지지 않고 비교적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개최되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화려한 스피드를 발휘하지 못했다. 심지어 아프리카의 우수기록 보유자들이 힘든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를 외면하는 경향도 있다.
1991년까지 세계기록과 5분12초의 격차를 보였던 한국 최고기록은 황영조를 비롯한 이봉주, 김완기, 김재룡 등이 경쟁하던 황금기를 거치면서 1998년에 이르러 44초까지 좁혔으나 현재 2시간7분20초로 다시 3분21초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과거 우리 선수들은 고온다습한 악조건에서 강한 특성을 나타내면서 가장 난코스로 알려진 보스턴대회에서 3차례, 올림픽에서 2차례나 우승을 차지하였다. 내년 대구세계육상대회 마라톤의 우승자도 고온다습한 환경에 강한 선수가 차지할 가능성이 높으며 우리가 마라톤에 기대를 가져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기진 명대 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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