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逆베블렌 효과

생필품을 제외하고는 가격이 높으면 수요가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가격이 높을수록 오히려 인기를 끄는 상품들이 있다. 소위 명품 계열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들은 사회적 지위나 부를 과시하기 위한 허영심에 의해 수요가 발생하기 때문에 가격이 높을수록 수요가 늘어난다. '수요 공급 법칙'의 예외에 속한다. 미국 경제학자 베블렌이 발견했다고 해서 '베블렌 효과'라고 부른다.

이 베블렌 효과는 자본주의가 성숙한 사회보다는 '돈 맛'을 알기 시작한 중진국에서 더 쉽게 발견된다. 한국 남성이 돈을 벌면 제일 먼저 바꾸는 것이 자동차와 손목시계라고 한다. 남에게 가장 과시하기 쉬운 물품이기 때문이다. 중산층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명품 1, 2개쯤은 무리해서라도 장만한다. 그것도 안 되면 '짝퉁'이라도 들고 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그래서 베블렌은 "상층 계급의 두드러진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지각없이 행해진다"고 일갈했다.

그런데 최근 뉴욕타임스는 물질 만능에 빠진 미국인들이 소비를 재발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즉 물질적 소비보다 콘서트 티켓, 프랑스어 공부, 모나코의 호텔 투숙 등 정신적이고 경험적인 소비에 더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소비가 미덕'이라고 굳게 믿어온 미국인들이 물질과 거리를 둔 '동양적 사고'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가. 얼마 전 월스트리트저널은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 명품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호의적인 나라는 한국이라고 했다. '고가품 구입 후 후회하거나 죄의식을 느낀다'는 응답자가 일본 중국 유럽연합(EU) 미국은 대략 전체의 10∼15%였으나 한국은 5%에 불과했다. '명품 과시가 나쁘다'고 보는 응답자도 한국은 22%로, 일본 45%, 중국 38%, EU 27%, 미국 27%에 비해 크게 낮았다. 지난해 우리의 GDP 규모는 전 세계의 1.43%에 불과한데 고급 소비재 시장에서 한국의 명품족이 차지한 비중이 4%나 된 이유를 알 만하다.

'내 돈 내 맘대로 쓰는' 자본주의에 충실한(?) 한국민의 태도를 탓할 수는 없지만 소비에도 분명 품격(品格)이 있다. 아무튼 베블렌 효과가 미약하거나 거꾸로 된 사회가 '소통과 화합'에 훨씬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윤주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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