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둠을 싫어한다. 그래서 불을 밝히는가 보다.
밤에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사람 사는 곳에는 불빛이 있다.
많은 사람이 사는 곳은 불야성을 이룬다.
자세히 보면 하늘의 별빛보다 많은 것 같은 불빛들이 대지에
반짝이고 있지만, 그것은 손바닥만한 넓이에 불과하다.
어둠의 바다는 불빛을 삼켜 버리고 만다. 비행기는 한참을 달려야
다시 작은 불빛을 만나 인사한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서로 반짝이며 인사를 하는데 사람과 사람
가슴 밑바닥에 반짝이는 빛은 없을까?
서로를 보고 함께 환히 웃을 수 있는 빛은 없을까?
땅 위의 은하수를 조금 더 지나가면 서로 만나 포옹하는 불빛은 없을까?
'생의 여로'가 마침내 그윽함을 지나 이슥한 '본질'의 중심에 이른 듯합니다. 당연히 삶에도 '경지'라 할 만한 게 있음을 이 시는 보여줍니다. 그러한 정서적 경륜이란 단순히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들어간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는 건 물론 아닐 테고요.
세상에 스스로 불을 밝혀 '어둠'을 극복할 줄 아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만이 도시란 걸 만들어 '불야성'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도시의 문명이라는 불빛들은 얼핏 "하늘의 별빛보다 많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지만, 그것은 '우주의식'이란 관점에서 보면 기껏 "손바닥만한 넓이에 불과하"거나, 한 점 명멸하는 불빛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이룬 불야성의 문명이란 것도 결국은 '어둠의 바다'에 삼켜져 사라지고 말 운명이지요.
하지만, 그 작은 불빛들이 "사람과 사람/ 가슴 밑바닥에 반짝이는 빛"으로 현현(顯現)하는 때, 우리는 '죽음'이라는 어둠의 바다를 숭엄하면서도 따스하게 "서로 만나 포옹하는 불빛"들처럼 건너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둠과 죽음이 있어 이 삶은 더 숭고하고 겸허하며, 그 영혼의 불빛들은 더욱 따스하고 소중하게 저의 언저리를 밝히게 될 것이니까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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