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백년대계

레지던트로 일할 때였다. 인근 도시의 종합병원에서 외과 과장으로 있던 선배가 외과의 주임교수인 대학병원의 과장님을 만나러 온 적이 있다. 일하던 병원에서의 봉급이 다른 병원에 비해 너무 적어서 옮기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때 선배가 받고 있던 봉급을 물어본 교수님이 "내 봉급보다 훨씬 많은데 그래?"라고 놀라며 반문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이야기를 전해들은 우리들은 "교수님들은 물정을 너무 모른다"고 쑥덕거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금은 내가 그 대학병원의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가끔씩 교수라는 직함의 의사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다. "개업은 언제 할 겁니까?" "아직 개업할 형편이 안 됩니까?" "월급쟁이가 뭐가 좋습니까?" 등등이다. 결국은 "개업을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지 않느냐?"는 뜻이다. 그럴 때 순간을 헤쳐나가는 용도로 쓰는 답변이 내겐 있다. "제 주변머리에는 이게 딱 맞습니다." 그런데 그런 회피용 답변을 쓸 수 없는 경우도 만나게 된다.

얼마 전에 병원 근처의 식당에서 직원들과 회식을 하던 중 한 무리의 의대 학생들과 맞닥뜨린 적이 있다. 그렇게 우연찮게 학생들의 자리에 끼었다가 불쑥 질문을 받았다. "교수님은 왜 교수가 되셨나요?" 이미 술을 몇 잔 받아 마신 후라 취기가 오르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학생들까지 피할 수는 없었기에 솔직히 말했다. "나는 의사를 만드는 의사, 또 그렇게 만들어진 의사를 다시 가르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내게 그런 역량과 자질이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서 항상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실제로 학교와 진료실에서, 또 병실과 수술실에서 학생과 의사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늘 조심스럽고 스스로 모자란다고 생각되는 것이 가르친다는 일이다. 그런데 요즈음 아직 생각이 채 완성되지 못한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일부 사람들의 행태는 무척 실망스럽다.

이른바 교육방송과 인강(인터넷 강의)이라는 것은 그 영향력과 전파력이 가히 폭발적이다.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어떤 미디어보다도 훨씬 친밀하다. 그런데 수십만 명이 보는 EBS 강의에서 젊은 여자 강사가 군대를 살인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말했다. 나도 3년 3개월을 전투부대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수시로 사격훈련과 유격훈련을 받았으니 그렇다면 나 역시 살인기술자라는 말인가?

그런데 일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동안 인터넷 강의에서 일부 강사들이 마구 내뱉은 말들은 더욱 가관이어서 이 나라의 정체성조차도 의심케 한다.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자식까지도 가르치는 셈이라 하였으니 얼마나 큰 책임과 소명의식이 필요할 것인가?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100년간의 우리나라가 매우 걱정스럽다.

정호영<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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