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한 여학생의 삶

케이블 TV 프로그램에 한 여학생이 통기타를 메고 나왔다. 그녀는 주뼛거리며 싱어송라이터 재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재인은 그녀가 다른 친구와 결성한 그룹 이름이고, 실제 이름은 장재인. 올해 20살로 호원대 실용음악과 새내기다. 장 씨는 자작곡인 '그곳'을 불렀다.

펑키한 소울과 재즈 보컬을 뒤섞은 듯한 목소리로 부른 노래도 일품이었지만 쉽지 않게 산 지난 세월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았다. 그녀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선배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자주 학교를 옮겼다. 결국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고1 때 자퇴를 했다.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믿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부터 독학으로 기타를 배웠다. 이러한 내용이 인터넷에 소개되면서 그녀의 블로그에는 하루 수만여 명이 방문하는 등 깜짝 주인공이 됐다.

이 블로그에는 2008년 3월에 만들었다는 '먼지'라는 곡이 있다. '난 잊혀진 존재 보이지 않는 형상/ 그렇게 쌓이고 쌓여/ 언젠가 한 줌의 바람이라도 내게 분다면 폭발하듯 퍼져나가지/ 얼마나 멋진 일인가'라는 가사다. 혼자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느낀 외로움을 빈 방에 켜켜이 쌓여 가는 먼지에 비유했다. 18살짜리 여자 애가 썼다고 보기에는 어두운 구석이 많다. 그래도 그녀는 늘 긍정적이었다. 먼지의 가사에 대한 설명에서 바람이 불면 흔적도 없이 흩어지는 먼지가 아니라 폭발하듯 저 높이 비상할 것이라는 꿈을 꾸고 있었다. 또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 인터뷰에서는 많은 어려운 사람들을 대표해서 나온다는 생각으로 재미있게 할 것이라고 했다.

TV 장기자랑 프로그램에 출연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소개되면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이들이 적지 않다. 휴대전화 외판원이던 폴 포츠나 못생긴 노처녀 수잔 보일, 피자 배달원 제이미 퓨가 그랬다. 외모나 수줍은 성격 탓에 늘 소극적인 삶을 살다가 숨은 재능꾼을 찾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그들의 아름다움은 자신의 덫에 갇힌 많은 사람에게 꿈을 주었다는 데 있다.

장 씨의 지난 삶은 고단했다. 스스로 말처럼 음악만이 유일한 도피처이자 치료약이었다. 어쩌면 앞으로의 삶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가 미더운 것은 어려움을 헤치고 지금의 자리까지 선 삶을 알기 때문이다. 씩씩하고 의젓하게 자란 그녀가 참 고맙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