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였고, 1960년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하는 산업화가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우리나라는 30여 년 만에 중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국민들의 피와 땀의 결실인 경제성장으로 어느 정도 생활이 윤택해진 한국 국민들은 자유와 권리를 신장하는 '민주화'를 갈망하였다. 민주화의 기수였던 9선의 김영삼 의원이 1993년 2월 제14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문민정부를 출범시켰다. 문민정부는 공직자 재산등록'금융실명제 실시 등 과감한 개혁을 통해 산업화시절의 잔재인 부정부패를 일신하는 정책추진에 결단력을 보였다.
또한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엘리트 모임인 '하나회'를 해체, 군인의 정치화 차단과 함께 군사쿠데타의 씨앗조차 없애버렸다. 한편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중단된 지방자치를 전면 실시하여 시장'도지사뿐만 아니라 구'군의회까지 주민의 직접선거로 뽑는 풀뿌리민주주의의 기반을 확립하였다.
경제정책에 있어서 문민정부는 과거 개발연대 동안 6차례에 걸쳐 추진해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종료하고, 금융의 국제화와 공기업의 민영화 및 대기업의 업종전문화를 주내용으로 하는 '신경제 5개년 계획'을 새로이 수립'추진하였다. 또한 '지역균형개발 및 지방중소기업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1994), 지방경제를 육성하고 낙후지역과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문민정부의 '민주화' 추진은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억눌렸던 욕구분출의 계기가 되어, 국민들은 '제몫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노동계층의 욕구는 임금인상을 넘어 경영권 참여문제 등 광범위한 노사갈등으로 이어졌고, 외국 언론들은 머리에 붉은 띠를 맨 노동자 시위를 당시 한국사회의 대명사처럼 보도하였다.
민주화의 추진으로 대통령 선거를 비롯한 국회의원 선거'지방선거'보궐선거 등 거의 매년 선거를 치러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정치를 직업으로 살아왔던 집권세력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 무책임한 선거공약을 남발하는 등 선심행정이 난무하였다. 나라경제의 중심을 잡아야 할 경제관료들은 정치권의 눈치를 살펴야만 했고, 경제정책은 방향감을 상실하였다.
정치와 경제는 속성부터 확연히 다르다. 정치인은 목소리를 높여 자기주장을 관철하고, 바람을 잘 타거나 줄만 잘 서도 하루아침에 국회의원'시장'군수가 되는 벼락출세를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경제에는 공짜(No Free Lunch)가 없다. 경제의 세계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모르는 무지한 정치인들이 경제를 정치논리로 재단하다가 경제가 시들어간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문민정부의 경제운용도 그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문민정부 말기인 1990년대 후반 한국경제 운용의 실상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민주화에 따른 사회적 혼란은 심화됐고, 선심행정으로 국고는 고갈되어갔다. 또한 무분별한 자본시장 개방으로 국내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은 악성 단기외채에 과도하게 의존하였고, 중국 개방이 본격화되면서 한국기업은 인건비 싸고 노사분규가 없는 중국으로 기업이전의 속도를 더해갔다. 이렇게 허약해진 한국경제의 내실을 정부는 1996년 선진국 클럽이라 불리는 OECD 가입을 통해 만회하고자 했지만, 어려워진 상황을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97년 문민정부의 경제구원투수로 투입된 강경식 경제부총리가 금융개혁법안을 추진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외국자본들은 위기를 감지하고 한국에서 철수를 시작하였고,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은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한국경제는 외환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IMF 구제금융'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문민정부는 막을 내려야만 했다.
문민정부 초반 지방발전을 위하여 패기만만하게 추진된 '지역균형개발과 지방중소기업육성정책'은 '민주화'와 '세계화'라는 거대담론에 밀려서 햇빛도 제대로 못 본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문민정부 5년간 지방경제는 국책사업 하나 없이 시간만 낭비했고, 지방중소기업들은 제각기 살 길을 찾아 중국과 동남아로 둥지를 옮겨갔다. 결국 지방은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자치를 얻었지만, 지방경제는 앞이 안 보이는 암흑기로 접어든 것이다.
대구경북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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