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근대미술의 향기] 목랑 최근배 '만세'

광복의 기쁨…자제된 감정

종이에 채색, 170×167㎝, 1945. (유족 소장)
종이에 채색, 170×167㎝, 1945. (유족 소장)

경술국치가 일제의 병탄이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밝혀내려는 노력이 그동안 꾸준히 전개되어 조약의 강제성과 불법성을 찾아내고 마침내 최근에는 한일 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무효화를 지지하는 공동선언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미 굳어져버린 과거지만 계속해서 이 문제를 추적하는 것은 우리 삶 속에 깊이 내재화되기도 하고 또 현실의 각종 모순과 상처들을 덮어두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때문일 것이다.

일제 35년을 겪고 해방을 맞은 당시 개개인들의 상황은 다양했을 것이다. 특히 작가들의 심정과 감개도 역시 천차만별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이미 예견하고 기다린 사람과 졸지에 감격과 흥분으로 맞은 사람, 혹은 불안과 긴장으로 새로운 근심과 두려움을 품게 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헤아리기 힘든 숱한 사연들을 마음 속에 간직하지 않았을까.

당시 화단은 대규모 기념전을 열어 해방을 자축했고 화가들의 결집된 뜻을 표현하려 했다. 그러나 금방 달라질 것이 없는 미술계 내부의 관습은 실제 그림의 내용이나 창작에서의 변화를 보이기 전에 먼저 사회의식이나 이념적 성격의 분파 속에서 자신들을 표명함으로써 커다란 혼란을 맞게 된다. 그러나 이 그림의 작가처럼 어떤 심정으로 광복을 맞고 있는지 자신의 역사의식과 현실 인식을 동시에 짐작하게 하는 작품을 만든 경우도 있어 매우 흥미롭다. 목랑 최근배의 1945년 작인데 그는 서울 활동을 접고 1940년부터 김천으로 내려와 교편을 잡고 있는 중이었다.

단정한 매무새의 그림 속 여인은 옷섶과 치맛단을 여며 쥔 채 어디론가 향해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버선발로 문을 박차고 나가 맞을 그야말로 감격적인 표현 대신 경건하고 정숙한 분위기가 감돈다. 말쑥한 차림의 아이의 손에 태극기를 들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 한 명의 아들은 만세를 부르고 있는데 그의 발은 맨발인 채로다. 아이들은 그랬을 것 같다. 아직 일제가 패망하고 조국의 광복이 왔다는 그 의미도 모르지만 어른이 손에 들려준 새 깃발만으로도 이렇게 저절로 손이 번쩍 올라갔을 것 같다.

목랑의 이 작품 어디에도 감정의 동요를 나타내는 역동적인 표현이나 거친 페이소스는 없다. 격렬한 감정의 표출은 그리스의 헬레니즘에서나 바로크의 화면에서 또는 낭만주의에서 두드러지는 형식적 특징이다. 기쁨이나 슬픔 어떤 두려움의 감정도 안으로 누르고 질서나 조화를 중시하는 그리스 비극의 고전적 양식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러한 채색수묵화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런 표현은 쉽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현실을 해석하는 작가의 태도에서도 그는 어떻게 이 광복을 맞아야하는지 냉정하게 판단하고 숨김없이 드러낸 것 같다. 일반적인 역사의식과 너무 동떨어진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이구열은 이를 두고 "작위적인 속임수를 쓸 줄 모르는 목랑의 성격적 정직성과 선량함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평했다.

김영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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