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이즈입니다" 의사선고보다 사회 편견·가족해체 더 충격

에이즈 감염인 박정수(가명·왼쪽) 씨와 김정훈(가명) 씨는 에이즈 감염인들에게는 사회적 편견과 가족 해체에 따른 외로움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에이즈 감염인 박정수(가명·왼쪽) 씨와 김정훈(가명) 씨는 에이즈 감염인들에게는 사회적 편견과 가족 해체에 따른 외로움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주일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났을 때 주위의 차가운 눈길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비몽사몽간이었지만 집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 자리를 비우더니 그것으로 마지막이었죠."

"요식업계에서 일했는데 보건증을 발급받기 위해 보건소에서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 이른바 에이즈 검사를 했더니 양성판정을 받게 됐죠."

■강사로 활동하는 두명의 감염인

에이즈 감염인 박정수(가명·56·대전 거주) 씨와 김정훈(가명·31·대구 거주) 씨. 두 사람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에이즈 발병 사실을 공개하고 이달 말까지 5차례로 예정된 (사)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주최 제10기 에이즈전문강사양성교육 프로그램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박 씨는'감염인으로서 바라본 인권실태'를, 김 씨는'감염인으로 살아가기'를 강의한다.

두 사람은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있기 때문에 겉모습만 봐선 여느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개인사업가였던 박 씨는 7년 전 아들과 누이동생에게만 발병사실을 알린 채 쌍둥이 두 딸을 비롯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고, 요리사였던 김 씨는 2년 전 동생에게만 발병사실을 알린 채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판정을 받았을 땐 도저히 믿질 못했죠. '하필 내가…'라는 생각에 수없이 죽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져 지내는 일은 제게 가장 고통스런 일입니다. 하지만 이젠 내색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 씨는 발병사실을 알기 전 사업을 확장하는 등 하루 17시간씩 일을 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몸무게가 10㎏이나 빠지고 자주 감기증상과 오한이 들어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많은 병원을 다녔지만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고 혼수상태에 빠져 입원했던 대학병원에서 비로소 에이즈 발병사실을 알게 됐다.

"5개월간의 투병생활을 하고나서 담당 의사의 귀띔으로 대구에 에이즈 감염인 쉼터가 있다는 걸 알고 심리상담을 받게 됐죠."

김정훈 씨는"병원을 다니면서도 관련협회에서 강사와 다른 감염인들을 상대로 봉사활동을 한 경험이 사회 적응에 큰 문제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씨 역시 직장 화장실에서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며 약을 먹어야 했고 결국 직장을 떠나야만 했다. 친척들이'장가 안 가느냐"고 할 때는 더 괴롭다.

■잠재환자 포함 3만5천명 추산

우리나라 에이즈 감염환자의 99%는 성접촉에 의해 발병한다. 7월 말 현재 7천여 명의 감염인이 등록돼 있지만 보건전문가들은 잠재 환자까지 포함하면 5배는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청천벽력 같은 판정을 받으면 대개의 감염인들은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들고 가족이 해체되면서 노숙자 생활로 접어들기도 한다. 국가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자살률도 일반인의 10배가 넘는다고 한다.

(사)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김지영 사무국장은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인격적 대우가 가능할 때 감염인들이 갖는 사회적 적대감도 반감될 것"이라며"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감염인들을 국가가 보호·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엔 전국 8곳이던 에이즈 감염인 쉼터가 현재는 대구와 부산 2곳뿐이며 정부 지원금은 고작 연 1천550만원이다. 대구쉼터엔 6명의 감염인이 생활하며 심리상담과 사회복귀를 준비하고 있지만 더 많은 감염인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다.

박 씨도 "1년간의 강의와 봉사활동을 통해 느낀 것은 가족과 사회로부터의 따돌림이 에이즈 감염인들에게 가장 큰 아픔"이라며 "감염인들 중 가족의 사랑과 보호를 받는 사람은 굉장히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옆에 있던 김 씨 역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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