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특활교사로 있을 때 내가 어떤 아이를 유독 칭찬하고 예뻐한 것은 그 아이가 여느 아이들보다 똑똑하고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버릇없고 이해력이 부족하고 산만한 그 아이가 싫었다. 그럼에도 그 아이를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자주 안아준 것은 그 아이를 싫어하는 내 마음을 극복하고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그로 인해 수업 분위기가 망쳐지는 것을 경계하고자 의도적으로 선택한 일이었지만, 그러다보니 아이는 나를 몹시 따르게 되었고 결국 나도 그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너무도 엄격했던 아버지와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속에 살아왔다. 그럼에도 내가 아버지를 존경하게 된 이유는 어느 순간 아버지의 장점들만 바라보고자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오래전부터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아버지의 삶 속 깊숙이 들어가 아버지를 새롭게 고찰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믿어왔던 아버지에 대한 그릇된 관념과 한 인간에 대한 뜨거운 이해를 경험하면서, 존경받는 아버지를 가지는 일은 아버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나 스스로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언제나 나를 믿고 지지해 준 오빠가 있다. 내가 낙담에 빠져 있을 때도 그는 내가 무엇이든 이루어낼 수 있음을 이야기해 주었다. 난 자신을 그다지 신뢰하지 못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확고하여서 나는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나를 그렇게 믿는지, 나에 대해 진실로 그렇게 확신하였는지 간혹 궁금한 적은 있었지만 지금껏 한 번도 그걸 물은 적은 없다. 그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가 나를 그렇게 믿었건 믿지 않았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그의 말을 믿었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달라이라마의 강연에서 어느 기자가 물었다. "신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으십니까? 어떻게 증명하시겠는지요?" 그러자 달라이라마께서 대답하셨다. "그럼 믿지 않으면 됩니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어쩌면 우리는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오빠 또한 나를 확고히 믿었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믿고자 선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지지부진하던 나를 지켜보며 분명 그 믿음이 흩뜨러질 때가 있었겠으나, 적어도 그 선택만은 확고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허술한 믿음이 확고히 선택될 때, 진실과 거짓에 상관없이 삶은 그 선택을 통해 또 한번 새로운 진실에 몸을 일으킨다.
김계희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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