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네 곳에 흩어져 사는 성주 미영이네 가족

"제 소원은 일곱식구 함께 모여 사는거예요"

집이 좁아 7식구가 뿔뿔이 흩어져 사는 미영이네 가족의 소원은
집이 좁아 7식구가 뿔뿔이 흩어져 사는 미영이네 가족의 소원은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이다. 좁은 마루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미영이네 가족들.

7명이 4곳에 흩어져 사는 미영이네 가족

경북 성주군 초전면에 사는 이미영(가명·10·초교 4년) 양은 세 가지 소원이 있다. 하나는 뿔뿔이 흩어져 생활하고 있는 일곱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머니 유인숙(가명·47·정신장애 1급) 씨가 병원에 입원해 제대로 치료를 받는 것이다. 마지막 소원은 자신만의 공부방을 갖는 것. 미영이는 마지막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앞의 두 가지 소원만은 꼭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

미영이네 가족은 모두 일곱 명이다. 외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오빠, 언니, 미영이, 그리고 남동생이다. 한가족이지만 이들은 현재 네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비닐하우스 밭에 딸린 가건물에서, 오빠와 언니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집에는 외할머니와 미영이, 동생 세 식구뿐이다.

미영이네가 뿔뿔이 흩어져 사는 것은 함께 살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미영이네 집은 한옥주택이지만 세 명 정도 누우면 비좁을 정도의 단칸방과 작은 부엌이 전부다. 욕실과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허름한 방에는 낡은 장롱 하나와 앉은뱅이 책상, 작은 TV가 고작이다.

천장과 벽은 아무렇게나 찢은 비료 포대용 종이로 도배돼 있다. 빗물이 새 천장에는 얼룩덜룩 빗물 자국이 선명했다. 방과 연결된 좁은 부엌엔 낡은 가스레인지와 찬장, 그리고 금방 부서질 것 같은 싱크대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미영이네의 실질적 가장은 외할머니 김정임(가명·77) 씨다. 아침마다 미영이와 재규(가명·4)를 깨워 밥을 먹여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은 할머니의 몫이다. 청소며 빨래, 아이들 관리도 할머니가 한다. 엄마, 아빠가 함께 살지 않기 때문이다. 벌써 15년이 넘었다. 김 할머니는 "딸이 정신장애라 어떡하겠습니까"라는 말로 상황을 설명했다.

김 할머니는 손자들이 어릴 때부터 부모 사랑을 못 받고 커가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할머니는 "나 역시 허리가 좋지 않아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다"며 "내가 죽기 전에 딸의 병이 나아 애들 뒷바라지를 할 수 있게 돼야 눈을 감을 수 있을 텐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빚더미

미영이의 아버지 이정수(가명·47) 씨는 빚이 많다. 참외 농사를 한 이 씨는 농사를 수차례 망쳤고 아내마저 병이 악화돼 치료를 받느라 빚을 많이 졌다. 그래서 사는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간 상태. 현재 월세로 살고 있다. 집주인이 비워달라면 당장 비워줘야 한다.

이 씨는 현재 4천여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그 중 사채가 1천500만원이나 돼 빚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남의 땅 3천여㎡를 빌려 참외 농사를 짓고 있지만 남들처럼 농사를 잘 짓지 못해 가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씨는 참외 농사를 지으면서 틈나는 대로 남의 일을 도우며 노력하고 있지만 형편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 씨는 "허리가 좋지 않아 농사일이 갈수록 버겁다"고 했다.

현재 이 씨 가정의 수입은 참외 농사와 정부지원금이 전부. 빌린 돈 이자 갚고, 두 아이 학교 등록금에다 생활비 쓰고 나면 빚 갚기는 요원하다. 이 때문에 고등학교에 다니는 석규(가명·17) 군은 "기초생활수급자라 학비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적긴 하지만 분기별로 돌아오는 등록금을 낼 즈음이면 걱정이 돼 공부가 안 된다"고 했다.

◆가족끼리 함께 살고 싶어

석규 군은 주중에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주말에는 집에 온다. 사랑하는 부모와 동생들을 보기 위해서다. "가족이 뭡니까. 같이 자고, 먹고 함께 생활하는 게 가족 아닙니까." 석규 군은 나이에 비해 철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외할머니 김 씨는 손자가 집에 오면 말수가 적다고 했다. 부모와 동생, 그리고 자신의 앞길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러나 석규 군의 말은 어른스럽다. "병이 심한 어머니가 역할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제가 동생들을 챙겨줘야 합니다. 함께 이야기도 하고, 공부도 도와 주고…."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TV만 보고 있는 동생들을 볼 때면 화가 치밀 때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석규 군은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도와 주지 못해 미안한데 야단칠 수가 없죠."

그래서 자신이 더 노력하기로 다짐한다. 당장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도 있지만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공부를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우선은 식구 챙기면서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라고 했다.

오늘도 미영이는 두 손 모아 소원을 빈다. "엄마 병 고쳐 주고, 우리 식구 함께 살게만 해주세요."

성주·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