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를 불문해 영화를 즐기지만, 하드고어(Hardgore)는 다소 불편한 편이다.
피는 예사고 사지가 잘리고, 내장이 쏟아지는 영화들을 보면 왜 이런 영화를 만들까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영화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판타지를 형상화하는 매체라는데 동의하고 보면 하드고어도 그리 별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드고어는 '다량의 피' 또는 '응고된 피'를 뜻한다. 고어는 '선혈', '피범벅'이란 뜻.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한 영화를 말한다. '반지의 제왕'을 감독한 피터 잭슨이 초기에 연출한 '고무 인간의 최후'와 '데드 얼라이브'가 대표적인 하드고어다. 수박 터지듯 머리가 깨어져 뇌가 흐르고 사지가 절단되는 극한적 영상을 보여준다.
철자 하나 차이지만 하드코어(Hardcore)는 직접적인 성기 노출이 포함된 외설물을 뜻한다. 하드 코어 포르노의 준말이다. 하드고어는 '폭력의 포르노'라고 불리니 둘 다 인간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극한의 영화들이다.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사진)에 대한 관객의 불편함은 극장 안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러다 밥 먹겠나", "아이, 미치겠다"는 단말마의 탄식과 비명이 터졌다. 그만큼 견디기 어렵다는 얘기다.
공포영화의 잔혹한 영상은 이미 나올 만큼 나왔다. 여름마다 찾아오는 공포영화에는 칼은 물론이고 도끼, 낫 등 웬만한 흉기는 다 등장하며 이런 도구를 통한 도륙의 현장도 자세하게 보여준다.
개봉 예정인 '피라냐'만 하더라도 벗은 여성의 몸이 쇠줄에 절단되고 피라냐의 공격으로 몸이 잘근잘근 잘려나가는 것도 끔찍하게 보여준다. '13일의 금요일' 시리즈처럼 사지절단형 슬래셔 무비도 여름 공포영화의 단골이다. TV 시리즈물인 'CSI'만 하더라도 부검 장면이 안방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데 같은 표현 수위라도 '악마를 보았다'가 더욱 끔찍한 것은 우리 이웃들을 영화 속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외화에 등장하는 국적불명의 연쇄 살인마와 달리 경철(최민식)은 언젠가 스쳐 지났을 것 같은 이웃집 남자고, 피해자들도 모두 후배, 여동생처럼 친근하다.
'추격자'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 익숙했던 가옥과 타일 박힌 목욕탕, 골목 등이 사이코패스가 잠복한 공간으로 등장하면서 그 친숙함이 더욱 공포를 안겨줬다.
내부의 적이 모습을 드러낼 때 더욱 가공스러운 법이다. 전적으로 신뢰했던 인간으로부터 배신을 당해본 사람은 경철이나 수현(이병헌)과 같은 특별한 인물들만 악마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혼의 상처는 하드고어의 피범벅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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