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700자 읽기] 도시의 유목민/남영숙 지음/선우미디어 펴냄

어느 번창한 동네에 빈 집이 있다. 오래도록 비어 있는 그 집은 넓은 잔디밭에 잡풀이 무성한 채로 굳게 닫혀 있다. 그 집의 이야기는 이렇다. 여러 명의 형제들이 그 집을 물려받으면서 재산 분배 과정에서 생긴 갈등으로 인해 공동소유의 그 집은 아무도 살지 못하고 또 아무도 팔지 못하게 됐다.

저자는 수필가의 예민한 시선으로 그 집에 깃들어 있던 한때의 따스함을 떠올려보며 슬퍼한다. 땅 속에 누워있는 부모는 자식들을 위해 애면글면 재물을 모으던 젊은 날들을 되돌아보고 통곡할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불편한 진실이 널려 있기에 저자는 조금 물러나서 세상을 볼 것을 제안한다. 지척에서 보는 삶이란 통증만 자욱할 뿐, 보여지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그래도 아무리 멀리 떨어져 보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이별의 순간이다. 오남매를 품어 발아시킨 어머니의 주름은 생의 마디마다 새겨졌던 문신들이다. 입퇴원을 반복하는 팔순의 어머니를 보며 저자는 이별의 백신을 맞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한다.

좋은 수필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반짝이는 시선과 그것을 따라가는 유려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글솜씨다. 이 책은 두 가지 덕목이 지나간 자리에 묵직한 감동도 덤으로 선물한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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