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말조심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의 발언 파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야권은 자진사퇴와 대통령의 지명철회, 사법처리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인터넷에서는 '막말' 조현오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조 내정자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해명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지만 파문을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미국의 성공회 사제이자 작가인 개럿 케이저는 "우리는 언어를 사용할 때 가장 부주의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쓴 바 있다. 조 내정자에게 딱 맞아떨어지는 지적이다.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의 고소고발이 진행되고 있고,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구속수사 공세가 거센데도 정작 조 내정자 본인은 청문회를 받아서 경찰 총수의 자리에 앉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케이저는 또 자신이 정한, 16개 조항으로 된 말의 법칙을 소개했는데 그 중에는 무릎을 치게 하는 것이 적지 않다.

되도록 말을 적게 한다, 나의 요구를 먼저 파악한 뒤 상대에게 요청한다, 진실을 말하되 진실을 모두 말하지 않는다, 내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에게만 진심을 말한다, 듣는 일을 성스러운 의무로 생각한다, 답하기보다는 질문을 많이 한다, 당사자가 있을 때 할 수 없는 말을 남에게 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만큼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만큼만 내 입장을 설명한다, 다른 사람을 소외시키는 지식이나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대량소비시대를 사는 현대인답게 언어도 대량 소비하고 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휴대폰을 들고 다니지 않는 이를 찾기는 참으로 어렵게 됐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누구에게나 전화를 걸어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직접 말하는 대신 문자보내기라는 표현 양식을 사용해도 된다. 트위터는 140자 이내라는 룰을 제시해 뭔가 진보하고 고급스럽고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언어의 대량 소비를 부추긴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이 와중에서 조 내정자만큼은 아닐지라도 우리 역시 심하게 말을 낭비하고 있고 심하게 말을 오염시키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케이저의 말의 법칙을 지키기는커녕 거꾸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말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말조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그러면서 올바른 현실 인식과 판단력의 중요함에 대해서도 주목하게 된다.

이상훈 북부본부장 azzz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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