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아침에 '대본 외워야 하는데' 하면서 침대 주위를 둘러보며 일어나요. 사실 몸은 힘들었지만 촬영 내내 정말 행복해하면서 보냈거든요. 그래서 무의식중에도 촬영장이 그리운가봐요."(웃음)
얼마 전 종영한 SBS 일일아침드라마 '당돌한 여자'의 히로인 이유리는 아직 자신이 맡았던 지순영이란 인물에서 헤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발랄한 소녀에서부터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엄마, 젊은 시어머니까지 다양한 모습의 연기를 소화해냈다. 연기자를 일컬어 팔색조라고 하는데, 이유리는 '당돌한 여자'를 통해 진정한 팔색조로 거듭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팔색조요? 과찬이세요.(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하지만 각 연기마다 잘 어울리게 봐주신 것 같아 다행이고, 또 감사드려요. 솔직히 제가 아직 미혼이잖아요. 그래서 아내의 남편에 대한 사랑,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처음에는 감이 잘 안 왔어요. 그래서 상대역인 이창훈 씨한테도 물어보고, 집에 가서는 어머니께 자문하면서 캐릭터를 잡아갔죠."
#'당돌한 여자' 촬영 내내 행복
땀을 흘린 자에게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준다는 진리는 이유리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가 어렵게 순영이가 되어 가면 갈수록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뜨거워진 것. 첫 방송을 8.5%로 시작한 '당돌한 여자'는 3주 만에 10%를 돌파하더니 12주차에 20%를 넘어서며 아침드라마 시청률 1위를 굳건히 했다.
"'시청률이 몇 %다'라는 것은 사실 감이 잘 안 왔어요. 그런데 현장 나가서 시민들, 특히 아주머니들을 만나면 '요즘 우리 드라마가 인기가 있구나'를 알겠더라고요. 정말 저를 많이 알아봐주시고, 식당에 가면 맛있는 것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고 하는 모습이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새삼 '드라마의 힘이 대단하구나'를 느꼈죠."
실제로 인터뷰를 마치고 늦은 점심을 위해 식당에 들어갔더니 그곳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반응은 마치 아이돌스타를 본 여학생들 같았다. 한 아주머니는 "실물을 보니 더 예쁘다"며 "드라마 하는 동안은 다들 일을 멈추고 TV 앞에 모여서 봤다. 어쩌면 그렇게 연기를 잘하냐"고 반색했다. 그러면서 계란말이를 서비스로 내오기도 했다. 이에 이유리는 연방 미소 띤 얼굴로 "감사하다"고 인사하기에 바빴을 정도.
#순영처럼 어려움 맞서 당차게 행동할 것
이유리는 이번 드라마를 시작하기 전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드라마 제목이 '당돌한 여자'인 만큼 당돌한 여자가 되어 보겠다"고 밝혀 눈길을 끈 바 있다. 사실 그녀가 여태껏 보인 연기는 지고지순한 모습의 마냥 착한 모습이었다. '부모님 전상서'에서 교장선생님의 막내딸 역을 맡아 착한 이미지 캐릭터를 연기했고, '엄마가 뿔났다'에서 역시 막내딸로 그렇게 연기했다. 그런 면에서 극중 이유리가 맡은 순영은 지금까지 그녀가 연기한 인물들과는 사뭇 다른 캐릭터였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 당돌하다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대개 당돌하다고 하면 버릇없다는 쪽의 나쁜 이미지를 생각하는데요, 순영이를 연기하면서 당돌하다는 것이 어려움에 맞서 당차게 행동한다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순영이를 보세요. 어렸을 때 남편과 사별하고, 자신이 낳은 딸은 아니지만 온 힘을 다해 키우고, 또 재혼 후 고된 시집살이를 겪고 하는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해결해 내잖아요. 제가 아직 결혼을 안 했지만 연기를 통해서 본 결혼생활은 한 번 져주기도 하자, 한 번 참을 것을 두 번 참자 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더라고요. 그런 측면에서 저도 이제 당돌해지지 않았나 생각이 돼요."
이유리의 한마디, 한마디는 마치 결혼생활을 오래 한 연륜 있는 주부의 모습 같이 느껴졌다. 그녀가 이번 드라마에 얼마만큼 몰입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당돌한 여자'에서 이유리가 보인 연기 중 최고는 극중 딸로 나오는 딸기와의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그녀 역시 딸기와 연기한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행복했다고 추억했다.
#예쁜 딸 낳아 예쁜 배우로 키우고 싶어
"제가 막내이다 보니까 동생이 없잖아요. 그래서 아기를 막 예뻐하고 그런 것을 잘 못했었는데요. 이번 드라마를 통해 딸기를 만나면서 많이 배웠어요. 모성애가 어떤 건지 어렴풋이 알게 됐고, 나중에 제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해야겠다란 마음도 다잡게 됐고요. 어쩌면 딸기가 저를 진정한 순영이로 만들어 준 것 같아요."
극중 딸 딸기 얘기를 하다 보니 실제 결혼을 한다면 어떤 가정을 꾸리고 싶을지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우문을 던졌다. "딸이 좋아요? 아들이 좋아요?" 그러자 그녀는 현답으로 기자를 머쓱하게 했다.
"아이 키우는 건 연기가 아니라 현실이다 보니 실제로 아기를 낳고 키운다는 상상을 별로 안 해 봤어요. 아이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고, 성격이나 인격을 다 만들어줘야 하는 부모란 위치가 되면 겁날 것 같아요. 그래도 아이를 낳는다면 정말 행복할 거예요. 딸도 좋고, 아들도 좋아요. 마냥 아기가 예쁠 것 같은 걸요. 저는 이왕이면 많이 낳고 싶어요. 그래서 소질 있는 아이 있으면 배우도 시키고 싶은데요. 제가 연기자니까 가정교육을 통해 자연스레 연기를 가르치고 싶어요. 엄마와 아기가 서로 연기를 한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예쁜 딸 낳아서 정말 예쁜 배우로 키우고 싶어요. 이런 게 부모의 마음 아닐까요."
#어머니 연기 맡아 마음 넓고 깊어져
그녀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확실히 한 단계 성숙한 모습이다. 다양한 연기를 해냈다는 것에서, 특히 어머니란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 그녀의 마음을 좀 더 넓고 깊게 만들었다. 연기에 대해 새로 눈을 뜨게 됐다는 이유리가 꿈꾸는 자신의 모습은 어떨까.
"유쾌한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정말 배우라 불릴 수 있는 배우는 40년마다 한 명이 나온다고 하는데요. 저는 정말 오래 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겨우 10년 했거든요. 40년 주기를 생각한다면 4분의 1밖에 못 온 셈이죠. 많은 것에 도전할 수 있는 나이잖아요. 이번 드라마에서 달라졌듯이 앞으로는 좀 더 밝고 친근하면서 유쾌한 연기를 해 보고 싶어요. 한 이미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 같아요. 고정된 이미지를 언제든지 깰 수 있는 배우 이유리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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