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산사랑 산사람] 홍천 팔봉산

작은 덩치 속 비경'스릴 감춘 '명산'

비만 오면 입산통제다. 물이 불어도 출입구를 걸어 잠근다. 결빙기 겨울 석 달은 아예 등산로가 폐쇄된다. 산길이 신작로처럼 뚫린 요즘 이렇게 까다로운 산이 있다니 대체 어딜까. 강원도 홍천의 야트막한 산 하나, 홍천의 '작은 악동'으로 불리는 팔봉산(327m)이다. 까다롭게 입산을 통제하다 보니 연간 240일 정도밖에 등산로가 열리지 않는다. 이렇게 안전을 챙기는데도 매년 헬기가 10번 이상 출동한다. 모두 인명구조를 위해서였다. 길이 험해 웬만한 구조장비로는 손을 쓰기 힘들기 때문이다.

#노송'바위의 환상 조합

굽이치는 홍천강 위에 떠있는 듯 자리 잡은 팔봉산은 첫 느낌에 잘 꾸며진 분재를 보는 느낌이었다. 수반(水盤) 위에 기암괴석과 노송이 잘 조화를 이룬 멋진 분재 같은. 두 번째는 너무 작다는 느낌. 대구의 와룡산 반 정도 규모쯤 될까. "애걔! 팔봉산이 저렇게 작아, 한 시간이면 충분하겠네." 여기저기서 '책임 못 질' 농담소리가 들린다.

팔봉산 등산은 매표소에서 급경사길의 1, 2봉을 먼저 오른다. 그 다음 3봉에서 8봉까지 순서대로 진행한 후 8봉에서 강변도로를 따라 하산해 매표소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코스가 가장 인기가 높다.

일행은 1봉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초입은 생각보다 가팔랐다. '그래봤자 300m급인데' 하며 웃어넘긴다. 1봉 문턱에 장사진이 늘어서 있다. 20, 30m 남짓한 코스, 거의 암벽 수준의 급경사다. 등산객들은 로프와 철근, 발판에 의지해 네 발로 겨우겨우 경사길을 오른다.

30여 분 고투 끝에 1봉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홍천강이 황토빛 S라인으로 일행을 반긴다. 옛 선비들은 홍천강이 아홉 굽이를 휘돌아 흐른다고 하여 '구곡강'(九曲江)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 굽이는 금학산에 이르러 가장 완벽한 태극 모양으로 일컬어지는 북방면의 '수태극'(水太極)을 만들었다.

노송 쉼터에서 땀을 닦는다. 7월 말에 올랐던 금학산이 동쪽에서 산너울을 펼쳤다. 2봉 정상엔 삼부인당(三婦人堂)이 있다. 이 씨, 김 씨, 홍 씨 세 부인을 모시는 당집이다. 조선 선조 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굿이나 제를 올리는 당산제를 매년 열었다. 근래에는 3월, 9월 보름에 주민들과 등산객들이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있다.

#8봉의 퍼레이드'홍천강 S라인에 감탄

2봉을 내려 안부를 지나 암벽을 기어오르면 주봉 역할을 하는 3봉에 이른다. 중심이 되는 봉우리답게 북서쪽으로 다섯 봉우리들을 한눈에 펼쳐 보인다. 거친 암릉의 장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노송들. 마치 설악의 공룡능선을 축소해 놓은 듯하다. 좌우에서 팔봉산 자락을 휘감고 도는 홍천강의 유려한 곡선이 여름 햇살을 받아 어린(魚鱗)처럼 반짝인다.

3봉에서 넉넉히 조망을 즐긴 후 4봉을 향한다. 마지막 철계단에 이를 무렵 일행은 다시 한 번 긴 줄과 만난다. 해산굴(解産窟)을 통과하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다. 이 해산굴은 '산부인과 바위' 또는 '장수바위'라고도 한다. 30분쯤 기다려 겨우 차례가 됐다. 배낭을 벗어 위로 먼저 올리고 양손과 양발을 뻗어 균형을 잡고 몸을 틀고 꼬아 겨우 굴을 통과했다. 앞선 사람이 굴을 빠져나가자마자 "응애~" 하고 울음소리를 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덩치가 큰 사람들은 혼자 힘으로 빠져나오기에도 무척 부담스럽다. 이 때문에 '혼자 나오면 자연분만, 끌려 나오면 제왕절개'란 우스갯소리가 생겼다.

5봉부터 7봉까지는 급경사의 연속이다. 등산로 곳곳엔 재난방송용 스피커가 설치돼 있다. 여름에 폭우가 쏟아지면 강변도로가 물에 잠겨 등산객들이 고립되기 때문에 신속한 대피를 위해 이런 시설까지 만들었다. 산은 작아도 재난관리는 국립공원급이다. 그만큼 재해에 많이 노출된다는 방증이다.

막 7봉을 돌아나오니 8봉의 위용이 일행을 막아선다. 이미 7봉을 돌아오느라 체력을 소진해버린 산꾼들은 복병의 출현에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몇몇은 8봉 완주를 포기하고 탈출로를 찾아 하산길로 내려간다.

봉우리 간격이 가장 길다는 7봉 역주를 끝내고 정상에 올라선다. 8봉의 대단원답게 조망도 수준급이다. 발밑 강변엔 원색의 텐트들이 늘어서 있고 피서를 즐기는 관광객들의 즐거운 비명이 계곡을 울린다. 강기슭엔 플라이 낚시를 즐기는 낚시꾼들도 보인다. 낚싯대 끝에서 은빛으로 뻗어나가는 낚싯줄의 궤적에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 연상된다.

8봉 하산길은 전체 구간 중 가장 위험하다. 입구엔 '노약자들은 우회하라'는 경고문이 버티고 서 있다. 산행 막바지길, 등산객들은 이미 방전 상태. 한순간 실수는 헬기 신세로 직결된다.

#산행 후 홍천강서 시원한 물놀이도

로프와 철계단에 의지해 한 발짝 한 발짝 걸음을 옮긴다. 평지의 고마움이 절실하게 와닿을 때쯤 강변길이 나타난다. 이 길은 홍천강과 산 밑 바위사면을 따라 로프와 철판을 다리로 연결한 도로다. 다리가 거의 수면 위로 지나가 등산객들은 마치 물위를 걷는 듯 쾌적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물이 조금만 불어도 데크가 물에 잠기기 때문에 입산 통제의 주범이기도 하다.

1봉에서 8봉까지 종주하는 데는 약 4㎞, 시간은 개인차를 고려해도 3, 4시간이면 충분하다. 산행 후 등산객들은 너나없이 물속으로 뛰어든다. 이미 산 속에서 땀으로 범벅이 되어 물속과 몸속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전국 100대 명산 중 가장 낮다는 팔봉산. 작은 덩치에 이런 비경과 스릴을 감추고 있으니 '작아도 다이아몬드'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래도 당당히 명산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연간 10만 명의 등산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홍천의 악동'을 찾아올 때 꼭 체크해야 할 일이 있다. 출발 전에 반드시 관리사무소(033-430-2353)에 전화를 해서 통제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오늘 팔봉산 등산로 열드래요?"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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