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같은 공간에서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고 잠시 후 흉측한 귀신과 마주친다면….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를 즐기는 이들은 의외로 많다. 공포감을 통해 긴장과 스릴을 만끽하고 무더위를 떨치는 것이다. 공포 마니아들이 늘면서 공포는 영화나 소설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호러홀릭의 계절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공포를 무서워하고 외면하려 하지만 오히려 공포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호러홀릭'(horrorholic'공포의 짜릿함에 빠진 사람)이 그들이다. 이들은 귀신이 나온다는 흉가를 찾아가는 것을 서슴지 않고, 무섭다는 영화나 이야기들에 열광한다. 공포를 매개로 한 인터넷 카페는 한두 개가 아니며 카페마다 수십만 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얼마 전 거제도의 한 조그만 놀이동산에 갔다 왔어요. 그곳은 유독 인명사고가 많이 나거든요. 주인도 몇 차례 바뀌고요." 직장인 양현모(37) 씨는 '흉가'를 찾아다니는 것이 취미다. 누가 죽었고, 이후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난 집이라면 깜깜한 밤에 섣불리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양 씨는 눈에 불을 켜고 그런 곳을 찾아다닌다. 다음카페 '흉가체험'의 대구지역장이기도 한 양 씨는 최근 무더위 덕분에 신이 났다. 보통 한 달에 한두 차례 정도 가던 흉가체험이 최근에는 일주일에 한 차례 정도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카페 접속자 수도 최근 부쩍 늘었다.
양 씨는 "일반적으로 하루 200명이던 접속자 수가 여름이 되면 600명 이상으로 증가한다"고 말했다. 양 씨는 흉가체험을 통해 정복했다는 쾌감을 맛본다고 한다. 흉가에 들어갈 때는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식은땀을 흘리지만 체험을 끝내면 성취감 때문에 시원함을 느끼고 가슴이 뻥 뚫린다. 양 씨는 "흉가체험을 통해 몸으로 공포를 느끼기 때문에 웬만한 공포는 무섭지도 않다"고 했다.
대학생 김요한(24) 씨는 영화를 통해 공포를 즐긴다. 어릴 때부터 공포영화를 좋아했다는 김 씨는 일주일에 최소 한두 차례는 공포영화를 감상한다. 김 씨는 "영화 중간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는데 그때 짜릿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영화나 비디오는 물론 컴퓨터 동영상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웬만한 공포영화는 섭렵한 상태다. 또 인터넷을 통해 관련 자료나 영상도 수시로 찾아본다. 김 씨는 스스로 공포영화에 내성이 있다고 했다. 아무리 무서운 공포영화를 보더라도 밤에 잠을 잘 못 자거나 여운이 계속 남는 일은 없다. 김 씨가 워낙 공포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공포영화 신작이 나오면 여자친구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공포영화를 봐야 한다. 김 씨는 "여자친구가 공포물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나름 담력이 있어 영화관에서 곧잘 같이 본다"고 했다.
직장인 이수현(25'여) 씨는 요즘 공포소설 삼매경에 빠졌다. 퇴근 후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는 세계 호러소설들을 모아놓은 단편집을 읽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이 씨는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장면을 그리면 정말 등줄기에 땀이 날 정도로 무섭다. 하지만 그런 긴장감이 좋아 자꾸 읽게 된다"고 했다. 그녀는 한 달 전 인터넷 카페인 '잔혹소녀의 공포체험'에 가입했다. 자기 전에 수시로 카페에 들어가 귀신 사진이나 심령 사진, 체험담, 동영상 등을 훑어본다. 이 씨는 "여러 가지 자료들을 보고 나면 잔상이 남아 덥다는 생각이 저절로 가신다"고 했다.
◆진화하는 공포산업
공포가 하나의 놀이문화로 바뀌면서 공포 관련 산업도 꾸준히 성장해왔다. 이에 따라 공포를 소재로 한 다양한 마케팅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과거에는 영화나 소설 등 특정 분야에서만 공포가 활약했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분야로 공포가 퍼진 것이 특징이다.
최근 공포는 하나의 축제로 각광받고 있다. 대구호러공연예술제가 대표적이다. 단순히 호러를 테마로 하던 연극제가 시민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공연예술제로 확대됐고 올해로 7회를 맞으며 꾸준하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대구연극협회 관계자는 "더위로 유명한 대구와 잘 접목할 수 있는 호러를 소재로 떠올려 시작했는데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며 "연극뿐 아니라 다양한 부대행사를 통해 하나의 여름축제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울산에서도 공포를 주제로 한 '태화강 대숲 납량축제'가 매년 열린다. 축제에서는 '귀신의 집' 체험이 하이라이트다. 바람소리가 스산한 대숲 통행로에 각종 효과음과 장치를 설치해 실감나는 공포를 느끼게 하는 한편 귀신 분장을 한 지역 연극협회 회원들이 대숲 곳곳에 숨어 있다 튀어나오는데 시민들의 반응이 좋다. 이 밖에 공포영화제나 귀신 그리기 등 부대행사도 다양하다. 충북 보은은 우리 고유의 공포 대상인 도깨비를 소재로 한 도깨비축제를 열고 있다. 도깨비 영화제를 비롯한 도깨비 숲길 체험, 도깨비 굿'인형극'난타'마술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무서운 존재인 도깨비를 관광상품화했다.
게임 분야에서 공포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PC게임뿐 아니라 모바일게임에서도 공포 장르를 찾아볼 수 있다. EA모바일코리아가 내놓은 '검은방 시리즈'는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모바일게임으로, 최근 출시된 3편은 출시 2개월 만에 다운로드 20만 건을 돌파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검은방은 이미 1'2편 합쳐 총 60만 건이 넘는 다운로드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게임이다. 범인에 의해 감금된 장소를 추리와 탐색을 통해 탈출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이 게임은 사실적인 그래픽과 긴박감으로 이용자들의 긴장감을 극대화시켰다.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 '피어'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 등 PC게임도 마니아 사이에서 큰 흥행을 기록했다. '레지던트 이블'이나 '사일런트 힐' 등 일부 공포게임은 흥행에 힘입어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공포게임을 즐긴다는 대학생 김성민(22) 씨는 "밤에 헤드폰을 끼고 공포게임을 하다 보면 스릴 있는 음향과 그래픽으로 인해 섬뜩할 때가 잦다. 공포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무섭다"고 했다.
공포영화는 예나 지금이나 이맘때 꾸준히 사랑받는 장르다. 더욱이 3D영화 바람을 타고 공포영화도 3D로 제작되면서 관람객들의 공포감을 배가시키고 있다. 지난해 7월 개봉한 미국 영화 '블러드 발렌타인'은 3D로 만들어져 색다른 공포를 선사했다는 평이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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