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 텍사스 주에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한 휴스턴.
대구 더위에 익숙한 취재진도 8월에 찾은 휴스턴에서는 에어컨을 벗어나 단 5분도 견디기 힘들었다. 연일 40℃를 오르내리는 폭염의 도시. 차량을 빼고 도심은 인적을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다.
하지만 열대의 도시, 휴스턴은 미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대도시(메트로폴리탄)이다. 도시의 역사가 불과 80여 년에 불과하지만 미국 4대 도시에서 올해 내 시카고를 제치고 미국 3대 도시로의 도약을 준비 중에 있다.
◆사람이 찾아오는 도시
휴스턴 다운타운에서 북쪽으로 승용차로 20여 분 거리에 위치한 메모리얼 시티몰. 200여 개의 상점들이 이어져 있는 대형 쇼핑센터인 이곳은 휴스턴의 역동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금융위기와 모기지 사태로 미국 소비지출이 감소하고 있지만 평일 저녁에 찾은 이곳은 불황의 그늘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승용차를 타고 끊임없이 몰려드는 가족 단위의 쇼핑객으로 길게 늘어진 쇼핑몰의 실내는 활기에 차 있었고 한 곳에 마련된 아이스링크에서는 오후 8시를 넘은 시간이지만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폭염 속의 쇼핑몰과 아이스링크. 북미 대륙에서 또 다른 두바이를 만난 느낌이었다.
한인 2세로 휴스턴 시청 공보관으로 10년간 근무하다 올해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취임한 지지리 씨는 "하루 평균 텍사스로 이주하는 인구가 1천600명이며, 이 중 상당수가 휴스턴으로 오고 있다"며 "도시 외연이 하루가 다르게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휴스턴의 발전은 오일머니에서 출발했다.
유전 개발로 돈과 사람이 몰려들면서 급격한 도시 성장을 이룬 때문이다. 현재 휴스턴 도심부 인구는 200만 명, 광역권 인구는 600만 명(1960년 160만 명)에 이른다. 엑슨 모빌과 쉘 오일 등 세계 6대 메이저 에너지 회사 중 5개의 영업본부가 있고 나사의 우주항공센터가 있다. 또 미국 내 500대 기업의 본사가 두 번째(30개)로 많은 도시다. 특히 명예 영사를 포함해 95개국에서 영사를 파견할 정도로 국제적 위상을 높여가고 있는 성장 도시다. 또 삼성과 대우조선해양, 현대조선 등 한국 주요 그룹 대부분의 지사가 있는 곳도 휴스턴이다.
휴스턴의 '급속한 성장'은 각종 언론조사나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젊은 전문직들을 위한 최고의 도시'(포브스지, 2010년), '인구성장이 가장 빠른 도시'(미국 인구 센서스, 2010), 일자리 창출이 가장 빠른 도시(뉴 지오그래피, 2009), 미래의 주요 도시(FDI 매거진).
지지리 씨는 "아직 한국에서는 주요 내빈들이 방문하지 않았지만 중국은 장쩌민과 덩 샤오핑 등 유명 정치인들이 반드시 다녀가는 도시가 휴스턴"이라고 말했다.
◆성장 배경
휴스턴의 성장은 '오일머니'가 전부가 아니다. 시 정부의 친기업 정책과 시민들의 열린 사고(open mind),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주거환경이 배경이 됐다.
실제 휴스턴은 1980년대 유가파동으로 심각한 불황을 겪었다.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실직자가 늘고 인구 감소로 이어져 '성장'밖에 모르던 도시가 어려움에 처한 것. 이때부터 지방정부는 산업 구조 재편을 위해 과감한 친기업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세금을 깎아주고 자금 지원에 나서는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기업 유치에 나선 것.
휴스턴 시 관계자는 "신규 기업이 들어오면 물품 구입 비용에 부과되는 세금(8.5%)를 면제해주고, 투자 문의를 해오면 휴스턴 지역 내 10개 카운티 중 기업 환경이 좋은 곳을 선정해 알려주는 등 맞춤형 지원을 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또 "주펀드와 기업혁신펀드가 있어 신규 기업이나 기존 기업이 신사업에 진출하면 자금을 지원해 준다"고 설명했다.
휴스턴 시청 내에는 기업 지원과 유치를 위한 시장실 직속의 조직이 있으며 시장은 3개월에 한 번씩 업종별 대표와 기업 현안에 대한 간담회를 갖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산업 구조가 의료와 그린에너지, 하이테크 산업 등으로 다양해졌고 1980년대 85%를 차지하던 에너지(석유화학) 관련 산업 비중이 40%까지 낮아졌다. 특히 의료 분야의 경우 7만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텍사스 메디컬센터를 비롯해 41개의 대형 의료기관이 있으며 삼성과 현대 그룹가에서 암 치료를 위해 방문했을 정도로 의료 도시로도 명성이 높다.
미국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종 차별'이 없는 것도 장점이다.
도시 내 백인 비율이 30%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히스패닉계와 흑인, 아시아 출신들로 구성돼 있으며 한인 출신 거주자만 4만여 명에 이르고 있다. 실제 휴스턴시는 '세계가 하나의 지역(휴스턴)으로'란 구호를 내걸 정도로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또 쇠퇴하는 북부 도시들과 달리 강성 노조가 없다는 점도 기업들이 이 도시를 찾는 이유 중 하나다.
휴스턴에서 한인식당을 운영하는 박민기 씨는 "미국 내 다른 도시들은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지만 식당 매출이 늘어나는 곳은 휴스턴밖에 없을 것"이라며 "주거비도 다른 대도시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아 더운 날씨를 빼고는 매력 있는 도시"라고 했다.
구미시와 인천시 등 국내 도시들은 물론 전세계 도시들이 결연을 하고 벤치마킹에 나설 정도로 휴스턴은 21C '성장 도시'의 대표적인 모델이 되고 있다.
휴스턴의 성장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신성장 산업으로 산업 구조 개편에 성공한데다 멕시코와 브라질의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남미 교역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어 성장 인프라가 더욱 탄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텍사스 휴스턴에서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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