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갈색 플라스틱 안경테 아래 흉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상처는 이마부터 턱 밑까지 길게 이어졌다. 영화배우 알 파치노가 열연했던 1980년대 갱스터무비 '스카페이스'(Scarface)가 떠오른다. 혹시 조폭 이야기?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회복지·국제구호 전문 비영리민간단체인 '굿 네이버스' 감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종흔(45) 변호사의 얼굴이다.
"대학 4학년때인 1989년의 일이었지요. 밤 늦게 교회를 다녀오다가 뺑소니사고를 당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기억을 잃은 채 쓰러져 있다가 겨우 깨어났습니다. 두 번째 인생을 덤으로 살고 있는 셈입니다."
서울대 법대를 다니며 청운의 꿈을 키우던 그에게 평생 치유하기 힘든 큰 상처를 남긴 가해자를 꼭 찾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포기했다. 교회 목사였던 선친의 뜻이었다. '도망친 그 사람도 지금 얼마나 마음 고생을 하고 있겠느냐. 이미 죗값을 치르고 있으니 용서하거라'는 말씀에 따랐다.
사법고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종교동아리 활동에 심취했던 그에게 교통사고는 변화의 계기였다. 자신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고 보상도 받지못하는 사람을 돕는 인생을 살기로 했다. 1999년 사시 41회에 합격,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이유다.
"지인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전국 곳곳을 돌며 소외계층에게 무료 진료·법률상담을 해주고 있습니다. 은퇴 후에는 해외봉사에 나설 생각이고요. 자식 가운데 한 명은 목회자가 돼 영혼을 구하고, 한 명은 법조인이 돼 약자를 돕고, 한 명은 의사가 돼 목숨을 살리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선친의 소원대로 돼 다행입니다."
그가 공정거래 분야를 '전공'으로 삼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소송대리인과 규제개혁심의위원을 맡고 있기도 하다. "얼마 전 대통령께서도 '공정한 사회'라는 화두를 제시했지만 평등한 경쟁은 사회의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어느 한 쪽에게만 유리한 경쟁은 결국 국가 전체적인 손해로 이어집니다. 우리 사회도 상생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길 기대합니다."
서울변호사회 교육이사로, 변호사들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온라인교육 활성화에 적극적인 그에겐 특이한 경력도 있다. 고시 합격 후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인턴으로 6개월 동안 근무했던 것. "법의 적용만큼 입법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지원했습니다. 한 번 법이 잘못 만들어지면 혼란이 적지않기 때문이지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 법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경산 하양에서 태어난 그는 마산에서 월포초교를 나온 뒤 대구로 옮겨와 영남중, 달성고를 졸업했다. 교통사고 후유증이 아직 있지만 틈날 때마다 각종 운동을 즐겨하는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하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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