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창석의 뉴스 갈라보기] 쥘리앵 소렐의 꿈

쥘리앵 소렐이라는 젊은이가 있다. 프랑스 소설 '적과 흑'의 주인공이다. 작가 스탕달은 이 소설에서 쥘리앵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빈곤 계층을 벗어나 부유한 계층으로 신분 상승을 꿈꾸는 젊은이의 전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쥘리앵은 한적한 시골 도시인 베리에르에서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형들의 학대를 받으며 자란 그는 돈 많은 시장(市長) 레날 씨의 집에 가정교사로 입주하면서 인생이 변한다. 그는 어렵게 자란 만큼 부자나 귀족 계급에 대한 맹렬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도 귀족 계급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불태우고 있었다. 자신의 매력에 빠진 시장 부인과 사랑을 나누게 되지만 곧 그는 파리로 가서 대귀족인 라 몰 후작의 비서로 발탁이 된다. 쥘리앵은 파리의 사교계로 진출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라 몰 후작의 딸을 임신시키면서 결혼을 눈앞에 둔다. 이윽고 완전한 귀족 계급으로 편입되려던 찰나, 옛 연인이었던 레날 부인과의 사이가 노출되면서 후작과의 관계가 파탄이 나고 결국 신분 상승의 꿈도 좌절을 맞는다.

쥘리앵은, 자신에게 몰락의 원인을 제공한 레날 부인에게 총격을 가한 뒤 체포된 법정에서, "부르주아들은 저를 처벌함으로써 저와 같이 가난하게 자란 청년들을 영원히 벌주어 용기를 꺾어버리고 있습니다"라고 최후 진술을 한다. 이 소설은 세계문학사에서 '비판적 사실주의'를 언급할 때 첫머리에 오르는 작품이다. 사회체제의 모순으로 생긴 계급간의 갈등이, 주인공의 욕망 안에서 메아리를 치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소설 '적과 흑'이 '1830년대사(年代史)'라는 부제(副題)가 붙어 있지만 신분 상승을 노리는 욕망의 모습은 오늘날에 와서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각 지방의 고등학생들이 서울권 대학으로 진학하는 비율이 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2010년 대학입시에서 대구의 고등학생들은, 수성구의 경우 4년제 대학 입학생의 20~30%가 서울권으로 진학하고 달서구나 북구는 10% 정도가 된다고 한다. 이는 1990년대보다 무려 두 배나 증가한 수치라는 것이다. 어떤 고등학교 학급에서는 세 명 중 한 명의 졸업생이 가족과 떨어져 혼자 서울로 가서 살고 있을 터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경주하는 젊은이들의 힘겨운 모습이 눈에 선연히 그려진다.

그러면서도 학생들의 서울권 대학 진학 비율이 이토록 높다는 사실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 지역 대학들의 경쟁력이 바닥을 헤매고 있다는 저간의 사정과 대기업이 거의 없는 지역 경제의 어려움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80년만 해도 한 반에 서너 명, 즉 5% 정도만 서울권으로 진학했으니까 꽤 우수한 인력들이 지역에 남아 있었던 셈이다. 당연히 지역의 대학들도 전국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그때도 대기업은 죄다 서울에 몰려 있었지만 그래도 상당수의 학생들은 지역에서 공부했다는 얘기다. 과거와 현재의 분명한 차이는, 우리나라 정치문화의식이 서울권으로 옮겨갔을 뿐만 아니라 경제체제가 아예 대기업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었다는 데 있다.

지역에서 살지 않고 서울로 가겠다는 젊은이들을 나무랄 일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쥘리앵의 야망'을 가질 것을 권유해 볼 만하다. 자신의 빈궁한 환경을 극복하여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계층으로 진입한 유명인의 성공 신화도 있지 않은가.

그렇기는 하지만 수도권을 제외한 우리나라 각 지역들의 입장은 정말 난감하다. 이런 급속한 유출이 이대로 수십년 진행되면, 1960, 70년대 탈농촌 현상처럼, 그래서 현재 농촌이 텅 비어버린 것처럼, 지역 도시들도 그렇게 될 듯한 우려가 든다. 머릿수로는 다소 버틴다 해도 우수한 인재들은 아예 지방에서 자취를 감출지 모른다.

일차적으로 지방에 소재한 각 대학들, 특히 거점대학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할 나위가 없다. 대폭적인 장학제도의 확대와 산'학 연계 등을 활용해 인재 유출을 막는데 사활을 걸어야할 것 이다. 그뿐 아니라 시에서도 지역대학 출신자들이 진출할 곳과 이들을 우대하는 각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강구해야 될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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