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임종실의 생활 안내문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 '불행하게도'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죽는 것이다. 암을 극복한 스페인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인 알베르트 에스피노사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영화를 어떻게 끝내야 하는 지, 결말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끝이 좋으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지만, 끝을 모르고 끝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있다면 영화는 종잡을 수 없게 된다"라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일부러 죽으려 하지도 말며,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말자는 것을 호스피스병동에 근무하면서 깨달았다. 건강할 때부터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마지막과 접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쩔 수 없이 나의 환자에게 그 때가 오면 평온실(임종실)로 병실을 옮긴다. 가족은 그 동안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마음의 준비는 늘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슬프고 두려워한다. 이 때부터는 호스피스서비스 대상자는 환자가 아니다. 환자 가족이다. 다음은 '평온실 생활 안내문' 중 일부다.

'우리는 언젠가 죽습니다. 그 순간이 이제 다가왔습니다. 아잔 브라흐만은 임종의 순간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훌륭한 콘서트가 막을 내려도 나는 결코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나의 감정이 정확히 그것과 같았다. 아버지의 죽음은 마치 멋진 콘서트가 마지막 막을 내린 것과 같았다. 너무도 훌륭한 연주였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가 '악기를 챙겨 집으로 돌아 갈' 순간이 왔다. 아버지가 영원히 내 삶을 떠났음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슬퍼하지 않았다. 울지 않았다. 얼마나 훌륭한 아버지인가! 아버지의 삶은 내게 얼마나 강한 영감을 주었는가! 내가 아버지 옆에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아버지 아들이었다는 것이 얼마나 운이 좋은가! 고마워요, 아버지." (중략) 임종의 단계에서 임종까지의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초조해 하시지 마시고, 그 순간을 기다려 주십시오. 자료에 따르면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는 감각이 청각입니다. 이제 곧 떠나시는 분 앞에서 좋은 말씀만 남기셨으면 합니다.'

평온실을 회진 할 때 가족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대충 언제 떠나는가'이다. 멀리 있는 친척에게 알려야 하고, 직장에도 언제부터 쉬어야하는 지 결정을 해야 한다. 복도 끝에서 소곤소곤 물어 온다. 현대인은 인생을 마무리해야할 때도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할 만큼 바쁘게 살고 있지만, 아직은 현대 의학으로 알 수 없다. 임종실로 옮긴다는 것을 예측하는 것만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는가보다. 호스피스 의사는 떠나는 순간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임종 직전까지 행복하게 살게 해드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악기를 챙겨 집으로 돌아 갈 때'까지 나의 일이기도 하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