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이 있다. 10년 동안 산중의 고독 속에서 수련을 한 차라투스트라가 "너 위대한 천체여! 너에게 만일 너의 햇살을 비춰 줄 상대가 없다면, 너의 행복이 무엇이겠는가!"하면서 터득한 지혜를 인간에게 나누어 주려고 산을 내려온다. 이때 백발의 노인을 만나고, 노인은 "고독 속에 잘 살아가고 있던 그대가 왜 다시 인간세상 속으로 내려가려 하느냐?"고 묻는다.
그는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노인은 "인간은 너무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간을 사랑하면 파멸되어서 자기는 인간 대신 신을 사랑하고 찬양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자 차라투스트라는 노인과 헤어지면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저 늙은 성자는 이미 신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니체가 왜 신이 죽었다고 이야기했는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어떤 때는 그 말이 진실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30여 년 전, 지금은 수련의들의 숙소로 변한 어린이병원이라는 병동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고아원이나 어린이 보호시설에서 보낸 많은 장애아이들이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 중 대두(大頭)라는 아이가 있었다. 머리가 몸 전체보다도 더 컸다. 바닥에 머리가 고정되어 팔'다리만 움직였다. 우리가 가면 반갑게 웃곤 했다. 간호사가 우유가 든 젖병을 입가에 대면 몸을 틀면서 젖병 쪽으로 혀를 내밀곤 했다. 말간 피부, 쫑긋거리는 입술, 백목련 꽃잎이 꽃싸개를 밀어올리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같은 연초록 회색 빛 눈자위, 앙증스럽게 움켜 쥔 손, 온 힘을 다하여 매인 몸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발버둥, 나는 그가 식물이라고 생각했다. 머리가 뿌리인 식물.
어느 날 그가 숨을 거두었다. CT와 MRI가 없던 시절, 우리는 대두가 속했던 고아원의 승낙을 얻어 두개골을 열고 검시(檢屍)를 했다. 무뇌증(無腦症), 뇌간(腦幹)만 존재하고 대뇌(大腦)는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신에 대해 생각했었다. '대뇌가 없는 그에게 영혼(靈魂)이 있었을까? 신이 존재한다면 영혼이 없는 인간을 만들 수 있었겠는가?'하고.
얼마 전 어느 부장 판사가 자살했다. 재판을 할 때마다 진실이 어느 쪽인지 수없이 고민했다고 한다. 어쩌면 '신은 정말로 죽었는가? 신이 살아있다면 왜 자신한테 진실을 가르쳐주지 않느냐?'하고 절규했었을 수도 있다.
의사들도 고민한다. 자기가 치료하는 환자가 잘못되거나 자꾸만 악화되어갈 때 신을 찾는다. 왜 이 환자가 죽어야 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다가 깨닫는다. 신은 존재한다고. 단지 남을 재판하는 일은, 인간의 생사를 결정하는 일은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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