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속에 인사청문회가 계속되고 있다. 총리, 장관의 자질과 국정 경영 철학, 도덕적 깨끗함을 검증해보겠다는 청문회가 후보자 한 명 한 명 껍질을 벗길수록 여름철 쓰레기 분리 수거함 뚜껑을 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청문회 때 터져 나오는 부정적인 의혹의 유형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의심스런 군 복무, 이상한 논문 등…. 5년, 10년이 지나도 권력 상층부의 모습은 그 모양 그 패턴대로다. 수법, 스타일 그리고 당사자의 변명과 여당 쪽의 편들기 해명까지 판에 박은 듯 그대로 반복된다.
대한민국의 청문회가 어느 날 호박씨 까며 살아온 일부 지도 계층의 바지 벗기기 쇼 무대처럼 돼 버렸다. 이제는 좀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로 새 내각을 바라보는 국민들로서는 '아직도 구름 위 세상엔 그런 일이 남아 있구나'는 배신감부터 들게 된다. 단 15개월 동안 로펌회사에 '자문'만 해주고 4억 원을 받았다는 20억 자산의 어느 장관 후보는 상가를 두 개씩이나 지니고도 재개발예정지 쪽방촌 8평짜리 지분을 2억 4천만 원에 사둔 걸 '노후 대책을 위한 투자'라고 우기는 이상한 해명을 내놨다. 당장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빠듯한 다수 서민 계층에게는 그런 호사스런 노후 대책 해명이 마음에 닿을 리 없다.
청문회 할 때마다 공연히 민심만 쪼개지고 허망해지는 것이다. 치부를 들추고 약점을 끄집어내는 바지 벗기기식 청문회가 얻는 것(인물 검증)보다 잃는 게(민심의 이반) 더 많을 바에야 차라리 누가 누군지, 뭘 해서 먹고 살아왔는지, 사는 집이 어디인지, 깜깜 모르고 그냥 장관자리 내 주는 게 속 편하다. 그것도 안 되겠다면 아예 청문의 기준 잣대를 확 끌어내려서 웬만한 건 덮고 넘어가 버리는 거다. 위장 전입쯤은 자식 위한 일이라고 덮고, 부동산 투기는 노후 대책이라고 덮고, 논문 시비는 대학가의 관행이라 덮고, 병역 논란은 병무 착오로 덮어주고…. 그게 서로서로 속 편하다.
어차피 국정 수행 능력이라는 게 나물 먹고 물만 마시며 살아온 청빈과 정비례하는 것도 아니고, 평생 한집에서 살며 바늘 꽂을 땅 한 조각 안 샀다고 능력 있는 장관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산속 폭포 밑에서 생식(生食)하며 사는 도인(道人)을 불러다 지식경제부 장관 맡긴다고 나라경제가 잘될 리도 없다. 어차피 4천500만 국민 중에서 뽑아야 하는데…. 학력'경력은 뛰어나되 가진 것은 적고 깨끗한, 그런 신인류(新人類) 같은 초인(超人)이 4천500만 명 중에 몇 명이나 숨어 있을 것인가.
권력의 분권과 남용 방지라는 청문회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현실을 보라. 청문회 주역들은 자리만 바꿔 앉아 전 정권 청문회 때 뭐 묻었던 쪽이 겨 묻은 새 정권 쪽 나무라는 꼴인데다 상류 계층은 물론, 중산층 소시민까지도 일부는 부동산 투기나 자식 위한 위장 전입, 유혹 등에 오염되고 빠져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늘에서 떨어진 인물이 없는 현실에서 최대한 기본만 가려 뽑아 인재를 쓰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상(理想)에만 치우친 지금의 청문회 방식이나 내용은 바뀔 필요가 있다. 물어뜯기식 정쟁(政爭)에 악용되고, 상류 지도층의 부패와 비양심을 벗겨냄으로써 계층 화합을 깨고 민심만 쪼개는 '바지 벗기기식 청문회'로는 어느 쪽에도 실익이 없다. 무차별 벗기기와 흠집 찾기로 만신창이가 된 장관이 청문회를 통과한들 얼마만큼 국민의 신뢰를 얻을 것인가.
냉소 속에 신뢰를 잃은 지도자가 힘을 잃을 건 뻔한 일이고 동력을 잃은 통치는 국정 효과를 내지 못한다. 결국 나라를 위한다며 만든 청문회가 이상에만 치우쳐 거꾸로 국정의 발목을 잡는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지도 계층의 추한 모습만 파내서 국민들 속을 뒤집어 놓는 바지 벗기기식 청문회, 이제 선진화된 방향으로 손볼 때가 됐다. 문제가 된 후보자들의 치부를 덮어 주자는 게 아니라 보통국민 중에서 어느 누구를 천거해도 청문회에서 박수 받고 임명될 만큼 격 높은 나라부터 만든 다음 제대로 된 제도로 다듬어 청문다운 청문을 해보자는 뜻이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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