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악성 미분양 전국 최대…"난리치는 서울은 엄살 수준"

[동반성장이 미래다] 암울한 대구 부동산시장, 실질적 대책없나

대구의 주택시장이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기존 주택 거래 침체 등으로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 나붙은 미분양 아파트 특별판매 홍보물.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대구의 주택시장이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기존 주택 거래 침체 등으로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 나붙은 미분양 아파트 특별판매 홍보물.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지역 주택시장과 건설업계는 암울하다. 주택시장은 전국 최대 규모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와 거래 위축으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지역 건설사들은 주택경기 악화로 인해 공사 수주에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대형 건설사들의 자금력과 기술력에 밀려 안방시장을 뺏기고 있다. 대구시는 역외 대형 건설사를 상대로 지역 업체에 공사 도급을 확대해 줄 것을 요청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으나,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상태이다.

◆대구, 준공 후 미분양 전국 최대

대구에는 건설업계의 '악성재고'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 6월 현재 1만2천123가구이며, 올 상반기에만 20% 가까이 늘어났다. 이 같은 규모는 전국 물량의 23.6%에 이른다. 국내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4채 가운데 1채가 대구에 있는 꼴이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3조5천억~4조원에 이른다. 특히 중대형 아파트(전용면적 85㎡ 초과)는 7천709가구로 65.7%에 이른다.

정부는 지방의 미분양 해소를 위해 몇 차례 취득·등록세 감면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미분양 사태는 기존 주택의 거래 침체와 아파트 가격 하락, 신규 분양 부진 등으로 이어지면서 지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부동산114 대구경북지사에 따르면 2007~2009년 대구의 아파트 가격은 크게 떨어졌다. 매매가격은 6.3%, 전세가격은 1.76% 하락했다.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가 812가구(6월 기준)에 불과한 서울은 같은 기간 매매 및 전세가격이 각각 3.8%, 14.6%씩 올랐다.

대구 수성구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최근 서울에서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고 난리지만, 대구에 비하면 '엄살' 수준이다"며 "대구는 3, 4년째 주택경기가 침체돼 문 닫는 중개업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수익성 좇아 중대형 과잉공급

미분양 사태는 수익성을 좇아 빈 땅만 있으면 아파트를 지은 건설사와 시행사, 대구시의 주택정책 부재, 금융회사의 무분별한 PF(프로젝트파이낸싱) 남발 등이 빚어낸 결과이다.

미분양 문제는 역외 대형 건설사의 역내 진출과도 무관하지 않다. IMF 외환위기 이후 역외 대형 건설사와 시행사들은 지역에서 아파트 분양사업을 경쟁적으로 펼쳤다. 역외 건설사들은 이전까지 대구를 넘보지 못했다. 청구, 우방, 보성 등 지역 유력 건설사들이 버티고 있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 유력 건설사들이 법정관리, 워크아웃 등으로 무너지면서 역외 대형 건설사와 시행사들이 봇물처럼 밀려들었다. 이들은 경쟁적으로 사업부지 확보에 나서는 바람에 기존 주택의 보상가격을 높였다. 특히 2005, 2006년이 심각했다. 대구 수성구 수성3가 일대의 경우 3.3㎡당 250만~300만원이었던 땅값이 3종 주거지역으로 지정되면서 1천만원까지 치솟았다. 비싼 값에 땅을 사들인 시행사와 건설사들은 부동산 버블에 편승해 분양가를 높였고, 소형 아파트보다 수익성이 좋은 중대형 아파트를 많이 지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00년부터 10년 동안 15만8천여 가구가 공급됐다. 이렇게 시장에 쏟아져 나온 아파트 중 상당수가 '불 꺼진 아파트'(준공 후 미분양)로 전락한 것이다.

◆주택정책 부실도 미분양 원인

미분양 사태의 원인과 관련, 대구시의 안일한 주택정책을 지목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대구 B건설사 주택분양팀장은 "2005년을 전후로 시세차익을 노린 가수요가 많았는데, 시행사와 건설사들이 이를 적극 활용해 실수요층이 빈약한 중대형 아파트를 많이 공급했다. 이것이 미분양 양산의 원인"이라며 "당시 인·허가 과정에서 공급물량과 평형 구성에 대한 지자체의 제재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지역 부동산업계에서는 대구시 주택정책 실패의 단적인 사례로 달서구 월배택지지구 개발을 꼽고 있다. 시는 2004년 옛 월배공단을 포함하는 상인·월성·월암·유천·대천동 일대 120만1천200㎡(36만4천평)에 인구 5만 명을 수용하는 주거도시 조성을 추진했다. 민간참여(기반시설 분담) 개발 방식으로 택지개발에 나선 것이다. 전체 부지 중 49%인 58만8천617㎡의 공동주택용지에 대해 2종 주거지역을 3종으로 변경하고, 용적률을 280%까지 상향 조정하는 등 인센티브를 주면서 주택공급을 부추겼다. 하지만 계획은 빗나갔다. 이곳에는 2005, 2006년 아파트 1만6천여 가구가 공급됐으나 상당수가 미분양으로 남아있다. 이런 이유로 달서구는 대구에서 미분양이 가장 많은 곳(4천615가구, 대구 전체 38%)이 돼 버렸다.

2005년 대구에서 아파트 시행사업을 했던 C씨는 "대구지역 미분양의 60% 이상이 중대형인데 여기에는 대구시와 구청의 잘못이 있다"며 "소형 평형에 대한 가격 통제가 심했기 때문에 업체들은 수익을 내기 위해선 통제가 적고 상대적으로 마진이 높은 중대형 공급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지자체는 법적 용적률을 인정해 주는 조건으로 기부채납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대책은 없나?

▷미분양 해소 및 주택경기 활성화=부동산 전문가들은 침체된 부동산 소비심리를 되살리는 것이 미분양 해소 및 주택경기 활성화의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정부가 4·13대책 등을 통해 양도세 및 취득·등록세 감면 연장, 미분양 매입 확대, 기존 주택 매입자 금융지원 등 조치를 취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여전히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이란 기대심리를 갖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경 최동욱 대표는 "소비자들에게 더 이상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줘야 한다. 이를 위해선 미분양이 일정 부분 소진될 때까지 신규 공급에 대한 지자체의 시장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경북연구원 곽종무 연구위원은 "전문가로 구성된 미분양주택 조기 해소 대책반을 운영해 건설사와 소비자들에게 주택거래 원활화를 위한 맞춤형 지원을 해야 한다"며 "준공 후 미분양아파트 임대사업 활성화, 건설업체 소유 부동산 유동화 지원, 지방 1가구 2주택 양도세 면제 등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사입찰 방법 개선=대형 건설 프로젝트에 지역 건설업체 참여를 확대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한건설협회 대구시회 조종수 회장은 "4대강 살리기 사업처럼 지역 건설업체가 대형 공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역 의무 공동도급 대상 기준 확대, 대형 공사를 소규모 공사로 분할해 입찰 기준을 지역 업체로 제한하는 등의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대구경북연구원 곽 연구위원은 "지역제한 대상 공사 규모 확대, 지역 의무 공동도급 공사의 지역 업체 최소 참여비율 확대 등을 통해 지역 건설업체에 수주 기회를 늘려야 한다"며 "지자체는 역외 대형 건설사가 수주한 지역 공사의 각종 인허가 및 심의과정에서 지역 업체들이 하도급을 많이 받을 수 있게 적극 권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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