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대학의 사회적 책무

회교 테러분자들은 2001년 9월 11일 미국 경제의 상징인 세계무역회관(World Trade Center)을 자살 공격, 폭파했다. 2천995명의 희생자를 냈다. 미국인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다(With us or enemy)'라며 전의를 불태웠다. 회교사원을 공격하고 즉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폭격하였다. 알 카에다를 숨겼고 지원했다는 이유였다. 콜로라도 대학의 처칠 교수는 '9'11사태는 미국이 그동안 행한 패권주의적 외교정책 때문이다'라는 글을 썼다. 여론은 빗발쳤다. 파면시켜라, 투옥하라는 여론이 빗발쳤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대법원은 학문의 자유를 거론하여 무죄를 선고했다. 자살비행을 감행했던 알카에다 대원은 모두 대학생들이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모두 죽었다. 미국인 입장에서 보면 저주를 받아야 마땅한 인간들이지만 미국 패권주의에 당하고 있는 회교 약소국가 대학에 9'11의 테러범들은 어떻게 비쳤을까? 이란의 대학 인도네시아의 대학에서는 9'11테러를 감행한 형제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가졌다. 많은 청년들이 알 카에다 병사가 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갔다. 나의 머릿속에는 우리 민족의 영웅 김구 선생, 윤봉길 의사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테러와의 전쟁이 아니라 테러를 근절시키기 위하여 열린 토론이 필요하지 않을까?

대학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가? 학문의 자유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학에서 학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가? 대학 교수는 학교, 사회, 국가 권력에 대하여 비판을 하여도 해고, 박해, 투옥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가가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Academic Freedom)이다. 그러나 그 학문의 자유, 대학의 자유는 역사시대 이후 종교, 이데올로기, 권력으로부터 유린되고 박해를 받아왔다. 이집트에서는 정부가 발표한 유아 사망률이 실제보다는 높다는 증거를 제시했다가 투옥되었다. '남한 정권도 독재를 하고 북한 정권도 독재를 한다면 우리가 북한보다 낫다고 할 것이 무엇이냐'고 했다고 교수가 구속되었다. 우리 대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의 근대사도 그렇게 발전해왔다.

최근 우리나라의 대학은 연구소로 전락한 듯한 느낌이 든다. 한국 대학의 현주소는 다르다. 정치 논리의 중심은 경제 논리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경제발전의 기초이다. 국가 예산은 이공계 교수에게 집중되고 있다. 좋은 연구가 있어야 좋은 교육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연구를 잘하는 교수는 강의가 소홀하다. 교수 자신이 연구비가 나오는 쪽에 비중을 더 두기 때문이다. 연구를 하려면 많은 국책연구소, 공공연구소가 있다. 좋은 강의를 할 때 좋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대학은 연구소가 아니고 교육하는 장이다. 강의 쪽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

대학 교육의 목적은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 한국의 지도자는 지역사회, 국가, 국가 간에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책무를 져야 한다. 대학에서 일본과 잘 지내자 하면 친일 매국노, 북한과 잘 지내자고 하면 친북 좌파로 몰아간다면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대학의 생명은 학문의 자유이다. 대학의 교수들에게 자유롭게 언로를 열어주어야 한다. 연구와 학생들과의 토론이 자유로워야 한다. 천안함 사태에 대한 정부의 조사에 이의를 제기하자, '어느 나라 대학교수냐'고 한다면 , 우리나라 대학에는 '학문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라고 할 수 없다. 연구하고 학생과 토론하는 것은 전적으로 대학 교수에게 맡겨야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마이클 샌덜이 쓴 인문학 서적이다. 서점가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저자 하버드대 샌덜 교수를 초청 토론회를 가졌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정치논리의 중심이 경제에 매달려 있고 사람들은 정치가 다루지 못하는 도덕이나 윤리 같은 정의에 목말라하고 있다. 시장경제로 대변되는 자유주의와 복지국가로 대변되는 평등주의가 대립되고 있다. 어느 것도 공동의 선은 아니다. 좋은 삶에 대한 끝없는 토론이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아름다운 사회로 가는 길이다. 몰가치로 가고 있는 한국 대학에 던지는 화두이다. 지금 대학가에 가면 모두가 경쟁이고 영어이고 컴퓨터이다. 공동의 선, 삶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대학의 모태인 인문학이 천대를 받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모 대학교 인문대학에서는 대구시내 구청으로 다니면서 시민을 상대로 삶의 질에 대한 인문학 강좌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좋은 사회,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토론이, 대학의 사회에 대한 책무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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