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특권의식

얼마 전 한 지인이 이런 경험담을 들려줬다. "어느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서 기다렸다. 접수번호를 받고 보니 족히 2시간 이상 걸릴 것 같았다. 그동안 무엇을 할까 고민에 빠져 있는데, 이 병원에 근무하는 동창이 떠올랐다. 즉시 연락을 했고 효과가 있었다. 바로 진료를 받았다." 그는 '빽'이 좋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면서 자신의 인맥을 은근슬쩍 자랑까지 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이 정도는 많은 이들이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생활 속에서 통용되는 빽 정도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공식 통로를 통해서는 해결이 안 되던 민원이 힘 있는 사람의 전화 한 통화로 해결되는 경우가 꽤 있다. 아직도 대부분의 대형건물에 특정인만이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다. 차량이 많이 몰리는 행사장에서는 소위 말하는 높은 신분들이 주차하는 공간은 항상 따로 마련된다.

대체로 빽의 행사는 음성적으로 이루어진다. 그 대가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편리와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타인에게는 피해를 줄 경우가 많다. 그러한 특혜를 누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이나 불이익을 준다는 데 대해 별로 인식하지 못한다. 오히려 특권을 누리는 것을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이거나 간에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만약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면 빽의 행사가 우리 사회에 반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빽을 통해 누리는 특권의식은 생각보다 우리 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 가장 큰 것이 사회에 사적 연줄망을 강하게 작동시킨다는 것이다. 개인적, 사회적 문제 해결을 공식적인 채널에 의존하지 않고 사적인 채널에 의존할 경우, 그 사회는 불신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사회구성원들이 공식적인 과정을 불신한다면 그들은 사적 채널에 의존하게 되고 이는 결국 사회부패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빽을 통한 문제 해결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당장에 자신에게 이익이 다가오고 편리함을 주는데 굳이 그것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빽은 다른 사람과 차별화를 통해 누리는 특권의식을 부여하기 때문에 심리적 중독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그것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다.

특권의식은 권위주의 문화가 강한 사회일수록 기승을 부린다. 권위주의는 차별화를 근간으로 해서 존재한다. 차별화는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할 때 가능하다. 그것은 사회를 철저하게 위계화하고자 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속성을 함유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는 특정인만이 향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자는 권력자대로 일반시민은 그들대로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인다. 우리는 늘 권력자들의 특권의식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데 익숙하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의 권위주의는 잘 보지 못한다. 병원에서 줄서기 싫어서 연줄망을 찾는 것 또한 권위의식이요 특권의식의 표현이라는 사실 말이다.

문장순 경북대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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