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잃었던 백 년 전, 의리를 택해 순국한 인물이 줄을 이었다. 왜적의 백성 되는 일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삶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의리를 택하는 것이 성현의 가르침이니, 오호라 우리 동포여 힘써 나아갈 때가 지금이 아닌가?" 안동 하계마을 출신 이중언이 남긴 말이다. '앞서서 가나니 산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의 노랫말을 떠올리는 장엄한 구절이다. 안동 하계마을 출신 이만도가 앞을 서고, 이중언을 비롯한 안동문화권 유림들이 뒤를 따랐다.
나라가 무너질 때, 가장 많은 순국자가 나온 곳이 경북이다. 전국에서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인물이 90명가량인데, 경북사람이 18명이다. 그 가운데서도 안동문화권 사람이 14명이나 된다. 이는 대의명분과 의리정신이 강한 퇴계학맥의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수치다.
그런데 나라 망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고, 정작 죽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나라가 망했으면, 책임질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 그들이 죽음으로 민족 앞에 사죄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죽음을 택한 사람은 죄가 없는 사람들이다. 침략에 맞서 싸웠고, 겨레에게 꺾이지 말라면서 숨져간 그들은, 어디를 보아도 죽을 만한 책임이 없는 인물이다.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들은 부귀영화를 누렸는데, 이와 반대로 의병장 출신 이만도는 패망의 책임을 통절히 느낀다면서 24일 단식 끝에 숨져갔다. 그러니 처단되어야 할 사람은 영화를 누리고, 책임 없는 사람은 죽음을 택한 것이다.
떼강도라는 말이 있다. 강도가 떼거리로 몰려들면, 웬만한 덩치나 주먹으로도 막아내기 힘들다. 거대한 땅을 가진 중국이 떼강도 앞에 흐물흐물 무너졌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던 일이 눈앞에 벌어진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그 나라에 기대어 안보를 소홀히 여기던 작은 이웃 나라, 조선의 운명이다. 조선 후기 내내 북벌론을 내걸면서도, 실제로는 청나라 안보 우산 아래 장기독점정권이 이어졌다. 세도정치라 부른다. 그러던 바람에 독자적인 국방능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믿고 지내던 청나라가 갑자기 무너지니 안보 우산은 날아가 버리고, 그 떼강도 앞에 발가벗고 선 꼴이 되었다.
서유럽 열강들이 집적거리고 치고받으며 싸우는 동안, 대한제국은 골병들고 무너져갔다. 더러는 의병으로 맞서 싸우고, 사람을 키우고 자본을 만들어 홀로서기를 시도하였다. 더러는 '시스템'을 바꾸어 체질을 고치려고 애썼고, 또 황제나라를 만들어 위상을 세운다고 나섰다. 하나의 강도에게 일방적으로 당할 수는 없으니, 뛰어든 강도들의 품을 오가며 경쟁도 시켜보았다. 하지만 떼도적들은 몇 번의 멱살잡이 끝에 이해관계를 정리하고, 일제라는 야수가 독차지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대한제국은 그렇게 망했고, 피눈물의 저항사는 더욱 혹심한 단계로 접어들었다. 5천 년 역사 전통이, 그 자존심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하지만 우리 겨레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고 사라질 리는 없다. 일제의 침략이 부당하고, 결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바로 자정순국이었다. 힘이 모자라 잠시 나라를 잃었지만, 뜻마저 굽힐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자존심이 바로 나라를 되살려 세우는 출발점이자 원동력이다. 매국노가 길거리에 내다버린 민족의 자존심을 되살려 세운 사람, 그들이 바로 자정순국자들이다. 김희곤 안동대 교수/김희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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