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진보 음악의 선두주자였던 핑크플로이드는 세 장의 명반을 남기고 1985년 사실상 해체의 길을 가고 만다. 1994년, 그룹 싱어인 로저 워터스 없이 발매된 새 앨범으로 그들은 다시 차트 정상으로 복귀하게 되지만, 타임지는 그 앨범에 대해 혹평을 했다. 새로운 시도는 없고 예전의 명반들을 짜깁기한 듯하다는 평이었다. 그들이 진보적인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혹평을 받을 일도 없었겠지만, 그들의 열정이 퇴보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음악의 생명력은 추락하고 만다. 27살에 생을 마감한 도어스의 짐 모리슨의 음악은 여전히 화려한 생명력을 자랑하지만, 위대한 밴드 비틀스의 멤버였던 폴 메카트니의 새로운 음악들을 나는 이제 잘 듣지 않는다. 록 스타는 만개한 시기에 큰 빛을 보지만 위대한 음악은 열정과 진보를 간직할 때에만 여전히 전진한다.
빚을 갚고 처음으로 큰 책상이 두 개나 생기던 날, 그리고 그 책상을 들여놓을 수 있는 큰 작업 방이 생기던 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가난이 드디어 끝이 났다. 나를 그토록 달리게 했던 그 절박함이 끝나던 날,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위기의 순간들은 지금까지의 힘들었던 날들이 아니라 오히려 앞으로의 안정된 나날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였다. 그리고 이제 무엇으로 내 열정에 불을 지필 것인지 곤궁하였다.
나는, 언젠가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루고 더 이상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안주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까봐 두렵다. 그때의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 열정이 사라진 나날 속의 태만한 평화가 순수의 이름으로 둔갑하게 될까봐 겁이 난다. 내가 어쩌면 영영 이루지 못할지 모를 힘든 꿈을 스스로에게 심어준 건 그런 이유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 갈망에 대한 허기가 절박함의 자리를 대신해 줄 것이라고 믿는 때문일지 모르겠다.
열정이란 결코 저절로 타들어가는 불이 아닐 것이다. 타오르는 아궁이에 마른 장작을 넣어주듯, 불을 지키기 위해서는 장작을 구하는 일이 끊임없이 필요할 것이다. 언젠가 내 마음속에 불씨가 꺼지게 된다면, 그때는 어둠이 짙어 장작을 구하러 가는 길도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해마다 작업을 마무리하고 달력 주문이 시작될 때면, 나는 게을러지지 않았는가. 여전히 열정을 간직하고 있는가, 그런 조바심들이 찾아든다. 내게 삶에 대한 열정이 식어 가, 나 자신의 노동에 스스로 감동받지 못하게 될 때, 아마 나는 부끄러워 더 이상 달력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사람들을 부르지 않을 것이다. 열정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 열정이 있는 곳에 삶이 있고, 사람이 머무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확이 있다.
김 계 희(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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