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인생의 택배원

초인종이 울려 나갔더니 택배 하는 사람이다. 양 팔에 물건을 가득 안고 땀을 뻘뻘 흘리며 상자 하나를 내민다. 더운 날 고생이 많다는 인사에 덧붙여 고맙다고 했더니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소프라노로 한마디 남기고 서둘러 내려간다.

"고객이 좋아하면 저도 기뻐요."

그녀가 남긴 말이 내 마음의 구석구석을 시침질하듯 한참 동안 찔러댔다. 남이 좋아하면 자신도 덩달아 기쁘다는 말이 형식적인 인사라는 것을 알지만 내 마음에서 곱씹혔다. 고객이 좋아한다고 해서 더운 날 택배라는 일이 무에 기쁠 일이겠는가.

그녀는 남의 물건을 들고 날마다 너무나 바쁘게 살고 있다. 한 집에 배달하고 나면 다음 집을 향해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느라 하루 종일 분주하다. 그럼에도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정작 그녀 손에는 타인의 물건을 만진 때 묻은 장갑 한 켤레만 흔적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녀는 좋은 물건을 끌어안고도 포장밖에 만질 수 없는 소유의 이방인이다. 그러니 온갖 물건들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늘 허전해야 하는 사람일지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소유의 기쁨보다 건네는 기쁨을 터득한 모양이다. 그녀의 밝은 표정에서 스스로 과정을 즐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쉽지 않은 일을 하는 그녀의 말과 행동은 내 삶을 비추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세상에 내 것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자식은 내 것인가. 또, 애써 모은 재산이나 명예를 온전히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 어느 것에도 자신 있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인생의 택배원이 아니겠는가. 금생에서 만난 것들을 잠깐 만져보고 떠나는 셈이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고 나면 또 하나를 취하기 위해 뛰어다닐 때는 팔다리가 아픈 것도 모른다. 끊임없이 바쁜 것이 우리 삶이고 많은 것을 취하고도 허전한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완전하게 내 것이 없는 세상에서 내 것 아닌 것을 위해 평생 분주하게 살아야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지 모른다.

우리는 갖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너무 많다. 그런 것들을 이루고 난 뒤에 소유의 딱지를 붙여 1인칭으로 만들어 가두기보다 2인칭과 더불어 환원할 때 더 기쁠지도 모른다. 많은 것을 가지고도 공허감을 느끼는 것은 남과 함께 더불어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남에게 건네는 기쁨을 즐기려는 그녀의 배달 방법은 그녀의 인생을 멋지게 바꾸어 줄 것이다.

주인석(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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