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포항과 포스코 미운털 박혔나

서울과 포항이 가장 빠르게 연결되는 길은 항공기 이용이다. 포항~김포공항은 약 50분이 걸린다. 다음은 KTX. 동대구~서울은 1시간 40분이며 포항~동대구역은 버스로 1시간 10분, 터미널과 역 간의 이동시간을 감안하면 열차를 이용할 때 포항~서울은 빨라도 3시간 10분 정도. 다음은 고속버스를 이용할 때인데 4시간 30분이다. 항공기를 이용하지 않을 경우 서울로 가는 데 이처럼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지역은 인구 50만 명 이상의 도시 가운데 포항이 거의 유일하다.

포항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새삼 언급하는 것은 접근성이 이처럼 열악한 포항에서 수도권 접근의 숨통 구실을 하는 공항이 폐쇄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서울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막힐 국면에 처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발단은 요즘 경북 경제의 주요 이슈로 떠오른 포스코의 신제강공장 건설 중단 사태. 포스코는 2008년 7월 17일 포항제철소에 연간 조강 생산 능력 200만t 규모의 신제강공장 착공에 들어갔다. 이 공장이 완공되면 포철의 조강 생산량은 1천760만t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1조 3천억 원이 투입된 이 프로젝트는 공정률 93% 상태에서 중단됐다. 건물 높이가 85m로 설계돼 인근 해군비행장의 비행 고도 제한 높이(66m)를 초과하는 바람에 지난해 8월 공사 중지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

공사 중단을 막기 위해 포스코와 포항시는 해군 및 국방부 설득에 나섰고 정치권 및 청와대에도 지원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신제강공장 공사 중단은 포항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켰다. 하루 평균 1천500여 명의 근로자가 실직 상태에 처했는가 하면 고급강 생산 지연으로 인한 기회손실은 연간 4천600억 원에 달한다. 신제강공장과 연계된 2조 4천억 원 규모의 신규 투자도 예정됐지만 무기한 연기됐다.

국무총리실이 중심이 돼 국방부, 국토해양부 등 관계 부처 실무진들이 행정협의회를 구성하고 논의를 벌였으나 부처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국방부는 지난 5월 전국 10개 군 비행장 주변 고도 제한 완화 조치를 내리면서도 포항은 제외시켰다.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됐던 서울의 제2롯데월드건설은 활주로 변경까지 해가면서 허용했던 국방부였지만 포항은 오로지 원칙만을 내세웠다. 그러다가 최근 협의 과정에서 국방부는 제강공장을 반드시 지어야 한다면 군사공항을 양양으로 이전하겠다고 제시했다. 이 경우에도 막대한 이전 비용은 포스코가 부담한다는 것. 포스코가 이를 받아들이자 이번에는 국토부가 반대하고 나섰다. 군용기가 공장 고도 때문에 위험하다면 민항기도 위험하니 포항공항을 이전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말이 이전이지 군 비행장이 옮겨가면 사실상 포항공항을 폐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항이 없어지면 포항을 중심으로 한 경북 동해안 지역은 한반도에서 가장 오지로 변모한다.

국무총리실은 용역을 발주해 양양으로의 이전이 타당한지, 아니면 시설 보강을 거쳐 공장을 짓도록 할 것인지, 이도 아니면 공장 건설은 불가능한 것인지를 가리기로 했다. 1년 전 문제가 제기된 시점에 해야 할 일을 이제야 하는 격이 됐다.

그동안 포스코와 포항시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조용한 협의와 호소를 해왔다.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에서 시끄럽게 떠든다면 득이 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언론에서 이 문제를 다루려고 하면 무조건 '참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래서 얻은 소득이 '원점회귀'.

이제 해결 방법은 나왔다. 보다 분명하고,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대정부 설득과 압박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년 동안의 협의 과정을 통해 대통령 고향에 대한 특혜를 바라서도 안 되지만 대통령 고향이라고 무조건 수그려서는 안 된다는 지혜를 터득했다.

포항시 공무원들은 요즘 정부 부처 공무원들 찾아가기가 두렵다고 한다. 정권 초기 우호적 분위기는 깡그리 없어졌단다. 최근 불거졌던 영포라인 파동과 지방선거 후유증으로 인해 미운털이 박힌 것이 아닌가 하는 감마저 느낀단다.

포스코는 포항만의 기업이 아니다. 지역의 자랑이요, 신화이다. 신제강공장 문제 해결을 위해 포항시민 나아가 대구경북이 나서야 한다.

최정암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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