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치 100년…진정 조선을 도왔던 사람은?

▲후세 다츠지
▲후세 다츠지
▲임페리얼 크루즈
▲임페리얼 크루즈

#후세 다츠지/오오이시 스스무 · 고사명 외 지음/지식여행 펴냄

#임페리얼 크루즈/제임스 브래들리 지음/송정애 옮김/프리뷰 펴냄

국치 100년을 맞아 인간의 두 얼굴을 보여주는 책이 각각 출간됐다. '후세 다츠지'는 일제강점기에 활약했던 인권변호사로, 일본인 최초로 우리나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상한 후세 다츠지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 책이다.

1880년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에서 태어난 후세는 1902년 메이지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판검사 등용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양심에 어긋나는 판결을 내려야 하는 법관의 자리를 그만두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으며, 가난한 민중과 핍박받는 민족들을 위해 무료 법률상담과 강연회를 열었다.

후세는 조선독립운동가와 농민들을 위해 헌신했다. 관동대지진 당시 잔혹한 조선인 학살에 대한 사죄와 책임을 통감한다는 내용의 사죄문을 언론사에 전달하기도 했다. 조선인 지원활동으로 변호사 자격을 세 번이나 박탈당하고 두 차례나 투옥되기도 했다.

후세가 조선 유학생들과 유대를 갖게 된 것은 메이지 법률학교 재학시절인 1900년 전후부터다. 조선인 사건으로 처음 변호석에 섰던 것은 1919년이었다. 1919년 '2·8 독립선언' 사건으로 검거된 최팔용, 백관수 등의 출판법 위반사건 2심 법정이었다. 당시 법정에서 후세는 "일본이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을 옹호한다는 명목으로 시베리아에 출병하면서 어째서 조선의 독립운동을 원조하지 않는가?"라고 검사에게 질문해 법정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폭로하는 동시에 조선침략의 부당성과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주장한 것이다.

그는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서'라는 좌우명으로 평생을 살았다. 그는 식민지 지배에 고통 받는 조선과 대만 사람을 사랑하며, 이웃으로 살았다. 1953년 후세의 장례식 때 재일 조선인은 "우리 조선인에게 있어 정말로 아버지와 형 같은 존재이고, 구조선과 같은 귀중한 존재였다"고 조사를 읽었다.

'후세 다츠지'가 암울한 역사 속에 핀 꽃이었다면 '임페리얼 크루즈(Imperial Cruise ; 제국주의 순방)'는 제국주의의 탐욕을 폭로하는 책이다. 이 책은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 국가들이 짜고 약소국(필리핀, 조선)을 나눠먹은 역사를 다루고 있다.

1905년 여름, 도쿄와 워싱턴에서는 일본의 대한제국 강점과 미국의 필리핀 식민지화를 서로 묵인하는 내용의 비밀협상이 분주히 진행됐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일본과 비밀협상을 벌이는 동시에 당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서 '정직한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다. 루스벨트는 이 중재로 나중에 미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평화의 사도가 아니었다. 그는 20세기 초 아시아 정책을 통해 미국을 제국주의의 거센 여울로 몰고 갔다.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를 단장으로 하는 미국의 아시아 순방단은 미국과 일본이 각각 필리핀과 대한제국 강점을 서로 묵인한다는 비밀 협약을 타결 지었다. 이른바 '가쓰라 태프트 밀약' 이다. 루스벨트는 이 순방단에 자신의 장녀 앨리스를 동승시켜 비밀임무를 은폐하고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호도했다. 미국은 필리핀을 강점하는 과정에서 수십만의 민간인을 살상하고, 하와이 왕국을 통째로 삼켰다. 조선과 이미 체결했던 조미(朝美)수호통상조약을 배신하고, 일본의 대한제국 침탈을 묵인하고 지원했던 것이다.

임페리얼 크루즈를 통해 루스벨트는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결과적으로 100년 전 한일합방은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가쓰라 일본 총리, 태프트 미국 육군장관의 극비 합작품인 셈이다.

지은이 제임스 브래들리는 '루스벨트가 대한제국을 배신함으로써 아시아 대륙에 대한 일본의 영토 확장계획에 파란불을 켜주었으며, 수 십 년 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고 단정한다.

이 책은 미국은 언제나 선한 편에 서 있었다는 도식에 젖은 독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루스벨트가 고문과 민간인 살육, 집단수용소 운영 등으로 약소국을 점령하고 괴롭힌 전쟁광이었다는 사실은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 지은이 제임스 브래들리는 태평양 전쟁 당시 미해병대원이었던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태평양 전쟁을 소재로 한 논픽션 '아버지의 깃발'을 쓴 바 있다.

각각 1만6천800원, 1만5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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