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노란 모자를 조문하는 법 / 최호일

꿈을 꿀 때도 노란 모자를 쓰고 있었지 노란 모자라고 불렀던 그 여자

비가 오는 날에도 눈이 크다

곱창과 소주 생각이 나서 곱창에 소주 마시는 생각을 했다

시간은 느리게 갈 것이고

밤은 덜 익은 곱창처럼 질기고 소주는 너무 써

물방울무늬의 암세포가 시간의 덩굴처럼 아름답게 자라는

누우면 젖과 젖 사이가 멀어지는 여자

서른여섯이니까 하늘을 봐요

같은 병실에서 잠이 드는 게 지루하고 미안해 별을 보고 말했다

별은 단순하고 쓸쓸한 쪽에서 빛난다

먼 부부처럼 밥을 따로 떠먹으며

그녀와 함께 바람 부는 날 소주에 곱창을 먹을 확률에 대해 생각했다

이런 생각들은 형광등 불빛으로 멀리 새 나가

더 먼 곳에서 사라진다

안녕, 노란 모자

노란 모자가 불이 켜지는 냉장고 위에 놓여 있다

죽음에 무사히 도착하려면 모자를 벗어야지

누가 내 혀를 잘라서 가지고 있는지

요즘 소주는 싱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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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암병동의 2인실이었던 듯. 화자는 노란모자 "눈이 큰" 여자와 같은 병실에서 "지루하게" 잠이 들고, "먼 부부처럼 밥을 따로 떠먹으며" 함께 "소주와 곱창을 먹을 확률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생각이란, "형광등 불빛으로 멀리 새 나가/ 더 먼 곳에서 사라지"고 말, 그렇게 "쓸쓸한" 것들에 지나지 않을 테고.

그녀는 "물방울무늬의 암세포가 시간의 덩굴처럼 아름답게 자라는" 중이었고, "서른여섯이니까 하늘을 봐요"라고 희망의 말을 내뱉어 보지만, 그건 "별을 보고" 한 말이라 그녀에게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별은 단순하고 쓸쓸한 쪽에서 빛나"는 법.

"안녕, 노란 모자"라고 냉장고 위 모자에 조문하는 화자는, 입맛이 소태처럼 써 마치 혀를 잘라내 버린 것 같은 느낌에 빠진다. "요즘 소주는 싱거워"라면서, 신 포도를 탓하며 씁쓸히 발길 돌리는 여우의 심정이 되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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