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은 우리 국민들이 쌀 다음으로 많이 소비하는 곡물이다. 쌀을 빼놓고는 곡물 자급률이 5%도 안 돼 대부분의 곡물을 수입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취약한 식량 상황을 부채질한 건 바로 밀이다. 제2의 주곡이지만 자급률이 1%가 되지 않으니 늘어나는 빵, 국수 등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수입을 계속 늘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곡물 수입국은 호주, 중국, 미국, 캐나다 등 이른바 곡물 메이저 국가에 80% 이상 집중돼 있다. 국제곡물시장에서 교섭할 능력이 절대적으로 취약한 것이다.
밀의 경우 주요 생산국들을 빵 바구니(breadbaskets)라고 부른다. 북반구에서는 세계 최대의 밀 생산국인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이 빵 바구니다. 남반구에서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남아프리카, 호주 등이 세계인의 빵 바구니 역할을 하고 있다. 빵 바구니로 불리는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가 수입 교섭력을 갖고 있는 나라는 몇 안 되는 셈이다.
올해는 태평양 동쪽 칠레 앞바다의 온도가 떨어지는 라니냐 현상이 여름부터 세계 기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곧 빵 바구니의 작황을 망쳐 국제 밀 시장에 수급 불안이 가중되는 쪽으로 나타난다. 극심한 가뭄으로 밀 농사를 망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 인해 국제 밀 가격은 이미 지난 두 달 만에 60% 올랐다.
연말에 곡물을 수확하는 남반구에서는 라니냐로 인한 건조한 날씨가 작황에 타격을 줄 것이란 예상만 하고 있을 뿐 어느 정도 피해를 입을지 추정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곡물 전쟁 또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 농산물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겨울에 본격화할 것이란 어두운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곡물을 자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곡물 수입국을 다변화하고 시장 교섭력을 높여야 한다. 빵 바구니를 여럿 만들어둬야 국민들의 주머니와 국가 경제에 식량이 미치는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라니냐는 스페인어로 여자 아이란 뜻이다. 남자 아이인 엘니뇨와 함께 20세기 후반부터 지구촌의 기후를 좌우하고 있다. 가뜩이나 아이 키우기 힘든 나라에서 아이를 더 무섭게 만드는 이름이다.
김재경 특집팀장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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