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와 함께] 제철 맞은 복숭아 수확

"뙤약볕 있어 과일이 익는구나…" 더위 고마워

처음에는 요령이 없어 복숭아를 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익숙해지니 금방 스티로폼 상자가 복숭아로 가득 찼다.
처음에는 요령이 없어 복숭아를 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익숙해지니 금방 스티로폼 상자가 복숭아로 가득 찼다.
수확한 복숭아를 과수원 밖으로 옮기는 것은 외발수레의 몫이다. 외발수레를 끄는 것도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여의치 않았다.
수확한 복숭아를 과수원 밖으로 옮기는 것은 외발수레의 몫이다. 외발수레를 끄는 것도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여의치 않았다.

'도화미인'(桃花美人)은 복숭아꽃같이 화사한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예로부터 복숭아는 뽀얀 피부에 발그레한 볼을 가진 미인의 상징이었다. 최근에는 복숭아에 함유된 비타민·유기산·펙틴 등이 피부 미용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인의 과일로 더욱 칭송받고 있다.

이번 주 기자는 제철을 맞아 한창 출하되고 있는 복숭아 수확을 체험하기 위해 김천시 어모면 은기1리에 있는 '산골짜기 과수원'으로 갔다. 복숭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청도다. 하지만 김천에서도 복숭아 농사를 많이 짓고 있다. 175.5㏊에서 연간 2천700여t의 복숭아가 생산되고 있다.

◆수확

김문수(51)·육심영(47) 씨 부부가 운영하는 '산골짜기 과수원'은 1만㎡(3천여 평) 규모다. 이곳에 심어져 있는 복숭아는 천중도·경봉 등 만생종으로 7월 말부터 9월까지 수확한다. 올 수확량은 작년(22t)보다 못하다고 한다. 올봄 이상기온 현상으로 열매가 제대로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수확시기도 보름 정도 늦어져 8월 들어 첫 복숭아를 땄다. 수확량은 줄었지만 가격이 지난해보다 좋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수확은 하루 140상자(1상자 4.5㎏)를 한다. 여느 과수원과 마찬가지로 일손을 따로 둘 형편이 못돼 부부가 아침, 저녁으로 수확을 한다. 수확한 복숭아는 선별·포장 작업을 거쳐 청과상에 넘어가거나 인터넷을 통해 판매된다.

본격적인 수확 체험을 위해 동네 뒤편에 있는 과수원으로 갔다. 과수원으로 걸어가는 동안 이미 등줄기에서는 땀이 흘렀다. 기자가 방문한 19일, 경북에는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전날 주의보에서 한층 강화된 폭염의 위력이 실감났다. 남아공월드컵 이후 '매미젤라'라는 별칭을 얻은 매미들의 요란한 울음소리도 폭염 앞에 잦아드는 듯했다.

과수원에 도착하니 풀이 무릎 밑까지 자라 있었다. 제초제를 잘 뿌리지 않아 낫으로 부지런히 베도 별 소용이 없다고 했다. 신고 간 운동화를 벗고 장화로 갈아 신은 뒤 과수원으로 들어가니 가지가 휠 정도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복숭아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과수원 주인인 김 씨가 "크고 잘 익은 것만 따세요"라고 한다. 하지만 큰 것이라는 기준이 퍼뜩 잡히지 않았다. 어느 정도 커야 다 자란 것인지 아리송했다. 옆에서 작업을 하던 김 씨가 알기 쉽게 설명을 해 준다. 병충해 방지를 위해 씌워둔 봉지가 터져 있거나 팽팽한 것을 골라 따면 된다는 것이다.

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비틀어 따야 한다는 말에 나름대로 열심히 비틀었지만 처음에는 가지까지 부러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조금씩 요령이 생겨 힘차게 시계방향으로 180도 돌리니 꼭지가 똑 떨어진다. 일에 탄력이 붙자 스티로폼으로 만든 상자 하나가 차는 건 금방이다.

수확한 복숭아는 외발수레에 실어 과수원 밖으로 운반해야 한다. 선별·포장 작업을 위해 과수원 밖에서 집까지 복숭아를 옮기는 것은 경운기의 몫이다. 외발수레를 끄는 것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 여의치 않았다. 무리하지 말라는 과수원 주인의 말에 한 상자만 실었는데도 수레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왼쪽으로 기울었다를 반복한다. 손에 힘이 들어가니 수레 끄는 일이 더 힘이 들었다. 수레와 씨름하는 사이 몸은 땀에 흠뻑 젖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용을 썼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선별·포장

선별은 흠이 생겼거나 벌레 먹은 것을 골라내고 크기별로 분류하는 작업이다. 크기별 분류는 기계로 한다. 저울처럼 생긴 기계에 복숭아가 가득 담긴 스티로폼 상자를 올려 놓은 뒤 복숭아 하나를 집어 들면 기계가 줄어든 무게를 계산해 크기를 가르쳐 준다. 상자를 올려 놓고 복숭아 하나를 집어 드니 기계에서 상냥한(?) 여성의 "3단"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몇그램"이라는 대답을 기대했는데 "3단"이라는 말에 뭔 소린가 싶어 궁금해하는 차에 과수원 주인이 크기에 따라 1~15단으로 구분돼 있다고 설명해 줬다. 1단이 가장 크고 15단이 제일 작은데 작은 건 수확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 8단이 가장 작은 것이라고 했다. 1단은 4.5㎏ 상자에 9개, 8단은 15개 정도 들어간다.

5년 전에 구입했다는 선별기계는 볼품은 없었지만 가격은 60만원으로 고가다. 처음에는 '왜 그리 비싼가' 의아했는데 선별작업을 해 보니 돈 가치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대중으로 선별할 때는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속도도 느렸지만 기계를 도입하면서 일손을 많이 덜었다고 한다.

포장은 간단하다. 크기별로 노란 종이에 싸서 생산자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박스에 담으면 된다. 청과상으로 가는 것은 박스에 담은 뒤 추가 작업 없이 그대로 보내면 된다. 택배로 보내는 것은 비닐과 종이로 박스를 덮은 뒤 테이프로 밀봉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밀봉하지 않고 보냈다가 운송 도중 복숭아가 한두 개 사라지는 일이 있은 후부터 밀봉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짧은 기자체험은 청과상에서 온 차에 포장한 복숭아를 실어주는 것으로 끝났다.

김문수·육심영 씨 부부에게 복숭아는 고마운 존재다. 복숭아는 대학을 졸업하고 올해 취직한 큰딸과 대학 2학년인 둘째 딸, 고 3인 아들을 교육시킬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 '여름은 여름다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여름 뙤약볕을 자양분 삼아 벼와 과일이 익어가기 때문이다. 기자 체험을 마치며 '덥다고 짜증만 내지 말고 여름이 더운 것에 고마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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