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문장들 / 천양희

당신은 어떻게

관악산이 웃는다고 쓰고

가지가 찢어지게 달이 밝다고 쓸 수 있었나요

개미의 행렬을 지켜보면서

인생은 덧없다고 쓸 수 있었나요

음악은 고통 받는 영혼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쓸 수 있었나요

당신은 또 어떻게

나무에는 강렬한 향기가 난다고 쓰고

꽃이 구름처럼 피었다고 쓸 수 있었나요

삶을 그물이라고 쓰고

환상이 삶을 대신할 수 없다고 쓸 수 있었나요

당신은 다시 어떻게

환상도 사실이라고 쓰고

가난도 때로는 운치가 있다고 쓸 수 있었나요

자기 자신이 인도하는 길을 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고 쓰고

당신의 의지가 당신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쓸 수 있었나요

당신의 문장들에 많은 빚을 졌다고

나는 쓸 수밖에 없습니다

'문장들'이란 언어입니다. 조물주가 세상을 만드실 때에도 바로 이 '말씀'이라는 언어로 더없이 위대한 '창조'를 행하셨다지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명제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언어는 우리의 전존재를 '들어올리는' 창조와 승화(昇華), 포월(包越)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어는 또 존재의 의지를 표상하는 것이어서, 우리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 인도하는 길을 가"게 해 주고,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침묵의 언어(?言)까지 포함하면, 언어 이전에는 사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지요. 언어에 의해 비로소 존재가 인식되고, 자연과의 관계가 맺어지고, 만상의 우주가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이렇듯 언어에는 '존재의 본질'이라 할 만한 게 담겨 있습니다.

'시 쓰기'란 언어를 통해 대상과 내가 하나(不二)임을 확인하는, 나아가 '인드라망'의 '관계 맺기'를 이루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 어떤 존재도 '문장들'에게 "많은 빚을" 지지 않은 게 없습니다. 자연스레 영화 '시(詩)'를 떠올리게 하는 시편입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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