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뺨 때리기보다 어깨를 쳐주라

세계 1위 명문대학, 하버드가 30년 만에 낡은 교양필수과목을 정리하고 미래사회에 맞는 새로운 과목을 대폭 신설했다. 과거의 케케묵은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가는 글로벌 경쟁 무대에서 뒤처진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혁신이다. 새롭게 신설된 대부분의 교과 과목에는 '세계'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세계의 과학' '세계의 사회' '세계 속의 미국' 과목이 그런 예다. '미학(美學)과 해석' '문화와 신앙' 같은 문화예술 분야도 강화됐다. 글로벌한 감각과 문화적 마인드가 앞으로의 세계 지성과 미래를 선도하고 지배해 나간다는 인식을 읽을 수 있다. '윤리적 사고'도 새로운 과목이다. 테러, 범죄, 마약의 세계 속에서 '윤리'의 가치를 새롭게 의식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세계 최고 대학의 발 빠른 변신 속에 우리의 대학가는 어느 정도 속도로 변하고 있는가. 엊그제 교육과학기술부가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원, 교육학과가 있는 대학 중에서 성적이 나쁜 대학을 공개 발표, 정원 감축 압박의 칼을 들이댔다. 내로라하는 국립대학교들도 B~D급 평가를 받았다. 내일쯤엔 일반대학에도 등급 평가를 내리겠다고 했다. 입학 지원 인구는 줄어드는데 대학 입학 정원은 포화 상태인 불균형에 미리 손쓰겠다는 교과부의 인식과 취지에는 일단 공감한다.

그러나 문제의 근본은 거시적 기준에서 살펴야 한다는 점이다. 백화점식으로 온갖 학과를 난립시켜 학생들을 끌어들여 과도한 경쟁을 초래시킨 문제의 불씨는 과거 무지한 정권 시절에 저지른 대학 인가 남발 정책 때부터 지펴져 있었다. 거기다 터널 출구 쪽 바깥에는 취업길이 막힌 졸업생들이 밀리고 있는데도 출구 쪽 사정을 모르는 학생들을 그럴싸한 학과 이름으로 유인해 터널 입구로 계속 밀어 넣어온 일부 대학의 책임도 적지 않다. 물론 하버드처럼 미래 세대에 적응할 새로운 학과를 연구 개발하며 정부가 손 대기 전에 혁신을 통한 자립을 모색하거나 성공하고 있는 대학도 있다.

대학의 혁신과 개혁은 반드시 해야 한다. 문제는 방법과 보편타당성이다. 우선 취업률이 낮으면 징벌을 내리는 것부터 짚어 보자. 지금 청년 실업률이 얼마인가. 정치와 경제가 일자리를 많이 못 만들면 아무리 대학에서 좋은 인재를 길러내도 취직을 많이 못 시키니 심사 기준을 맞추기가 어려워진다. 일자리는 조금 만들어 놓고 취업자 비율이 낮으니 문 닫으라는 것이 타당한 논리라면, 정부가 만들어 낸 일자리 숫자만큼만 뽑고 가르치고 취업시키면 살려 줄 거냐는 반론도 나올 수 있다.

따라서 그런 징벌적 개혁보다는 향후 10~20년 후에는 어떤 직업이 뜨고 어떤 과목을 가르쳐야 나라가 산다는 미래 세계의 인력 수급 등을 연구 조사해 대학에 가이드해 주는 지원책이 더 개혁적인 정책이란 얘기다. 부실 대학 없애겠다며 돈 많은 새 재단에 대학 인수를 유도, 인가해 준 교과부를 믿고 100억 원씩 투자, 정상화를 막 시작하는데, 6개월도 되기 전에 과거 재단이 저질러 놓은 부실 지표로 새 재단을 징벌하면 어느 누가 육영 사업에 투자하겠는가! 이 역시 신뢰 있는 대학 육성책이라 할 수 없다. 어차피 스스로 혁신 안 하면 자멸한다는 건 대학 스스로가 더 잘 안다. 학부모, 학생들도 혁신될 학교인지 그대로 스러질 학교인지 먼저 안다.

뺨 때리는 징벌보다 자율 속에 어깨 두드려 주는 지원이 나은 이유를 모르겠다면 세계의 대학 교육을 선도하는 미국을 보라. 미국 독립 이후 제정된 수많은 법률 중에서 가장 생산적인 법(法)으로 평가받은 법안은 세칭 모릴 법안(Morill Act)이다. 링컨 대통령이 서명했던 이 법안의 골자는 미국의 모든 주(州)에 최소한 1개 이상의 공과대학을 세우되 연방정부가 무상으로 학교 지을 땅을 분배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이 법에 의해 재정이 건실한 세계적 명문 대학들이 탄생, 오늘날 미국 대학 교육의 세계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148년 전에 나온 선진 정부의 발상이다. 우리나라 교과부도 곤장만 치는 정책보다 그런 스케일 큰 지원형 교육 정책을 발상해야 한다. 대학들의 대오각성은 물론이고….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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